현재에 머무르는 연습

여행지에서도 우리는 걱정을 한다

by 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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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우도에 왔다. 올때마다 좋은 곳, 마음이 편한 곳, 나와 우리 가족에겐 우도가 그런 곳인 것 같다.

3년 전 겁도 없이 8개월 아기를 데리고 제주에 왔을 때 짐도 많은데다 나는 또 음식을 잘못 먹어 장염에 걸려 제주 병원까지 들리고 엄청 고생했었는데, 셋째 날 우도로 넘어가면서부터 차츰 컨디션도 좋아지고 아가도 신기하게 덜 보채고,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 덕분에 편안하게 이틀을 더 머물다 갔던 좋은 기억이 있다.


8개월 아가는 어느새 5살이 되었고, 유아차없이 아기띠 없이 곳곳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즐긴다. 역시 이번에도 그냥, 그냥 좋다. 어딜가나 대부분 사람이 많은 제주와 달리 조용하고 한적한 이 자그마한 섬은 가만히 이렇게 얘기하는 것만 같다. '아무 걱정 없이 아무 생각말고, 그저 편히 쉬었다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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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매랄드빛 해변, 하얀 구름과 조화로이 그림 그려놓은 듯한 푸른 하늘, 높은 오름위에서 속이 뻥뚫리도록 보이는 멋진 풍경들.. 아름다운 초록빛 목장과 잔디밭.. 내 눈을 사로잡는 자연들에 마음이 일렁인다.

그리고, 이 숨막히게 멋진 순간들 속에서 나는 잠시 잠깐씩 다시 현실의 생각들을 한다. 온전히 눈앞의 아름다운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싶은데, 이 멋진 것들 앞에서도 잠시 잠깐이지만 마음 한켠에 이상하게 작은 걱정거리들, 실은 걱정할 것도 아닌데도 살짝씩 생각이 난다. 그러다 또 다시 자연이 나를 부른다. 그냥 지금 잠시라도 그냥 아무 생각말아봐~ 하며. 다른 생각을 할려하면 자연이 나를 다시 이끌고, 또 한눈을 팔면 또 하늘이, 바다가 내게 손짓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라서 이정도라도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일상에서 나는 얼마만큼 내 안의 이야기, 생각들에 잠식되어 있는지.


지금을 살지 못하고 현재를 잘 누리지 못하는 내 오랜 습관 탓일 뿐, 우도는 내게 지금 참 많은 걸 주고 있다. 묵묵히 아무 말 없이.


눈부시게 투명하고 맑은 바다, 울고 싶으면 울고 웃길 땐 까르르 까르르 데굴데굴 구르며 순수하게 웃는 우리 아가. 그렇게 투명한 마음이 되려면, 순간을 살려면 무엇을 해야하나. 나는 뭘 그리 가지고 싶지. 나는 무얼 그리 놓지 못하지.


내일은 다시 집으로 가는 날. 떠나기 전까지 머리는 닫고, 가슴을 열고 그렇게 있다가고 싶다.

또 내 눈 앞에 보이는 걸 그저 보기. 사랑하는 남편, 우리 아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두 남자가 쿨쿨 사랑스럽게 자고 있는 밤, 그것만으로도 나, 이미 차고넘치도록 충분한 생인데.



2024.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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