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런 일은,
했을 때 한 톨도 아깝지 않은 느낌.
글쓰기가 그렇다.
글로 돈을 버는 작가도 아니기에 쓴다고 무엇 하나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없는데, 신기하게 그렇다. 글쓰기는 품이 든다. 쓰는 것보다 남이 쓴 걸 읽는 게 더 편하다. 내가 직접 무언가 글로 풀어내는 일, 힘이 드는 일이다. 그런데 힘든데 하고 싶고, 힘든데 할 때 좋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피아노를 칠 때, 영어문장을 외울 때, 운동할 때도 느낀다.
어릴 땐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노는 게 더 좋아서, 자주 피아노 학원을 빼먹었고, 결국 체르니 들어가기 직전에 피아노 학원을 끊었다. 다 큰 성인이 되어 다시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퇴근 후 학원도 몇 달 다니고 또 독학으로 이런 저런 곡들을 연주하던 때가 있었다. 한 음 한 음 악보를 보며 두 손으로 멜로디를 익혀가는 시간은 지루할 때가 많은데 동시에 재밌다. 이상한 말 같은데, 따분한데 계속 하고 싶다. 자유 자재로 내 손으로 편하게 한 곡을 연주할 수 있을 때까지 익혀나가는 그 과정이 지겨우면서도 좋다. 그 과정 자체가.
영어를 잘 못하지만 영어로 편하게 말하는 일은 늘 내 버킷리스트에 들어 가 있다. 지금 전혀 영어와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씩 위기의 주부들이나 겨울왕국을 틀어놓고 스크립트를 따라하곤한다. 여행 가서 편하게 외국인과 대화하는 그런 짧은 반짝하는 순간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국어 말고 다른 언어 하나를 입으로 되뇌이며 연습하는 시간, 뻐근하면서 지겹지만 반복해서 할 때 자꾸 나아지는 그 감각, 과정이 좋다.
운동은 말해뭐할까. 하는 동안 상념이 잠시나마 없어지고 내 몸만이, 내 근육만이 그저 움직인다. 바야흐로 현재에 집중하게 해주는 시간이다.
글쓰기. 피아노 치기, 영어문장 외우기, 운동하기. 모두 나의 근육, 뇌의 어떤 부분이 반복적으로 ‘움직인다’는 감각이 있다. 약간은 지겨운데 전체적으로는 뿌듯한 무언가가 공통적으로 있다. 바보처럼, 묵묵히 꾸준히 했을 때 결과물이 좋아진다는 것도 또 하나의 공통점 같다.
내게 눈에 보이는 어떤 이득을 주는 것들이 아님에도 이것들을 할 때 그냥 곳간에 쌀이 한 가득이 있는 것마냥 마음 안이 뭔가 그득한 것이 참 좋다.
그 중에서도 제일 좋은 건 뭐니뭐니해도 글쓰기. 다른 것들과 다르게, 더 정확히 나를 보게 한다. 내 마음을 보게 만든다. 그래서 때로는 버겁고 두려울 때도 많다. ‘왜 굳이 해야하나, 왜 굳이 내 안을 보고 꺼내야하나.’ 보지 않고 살아도 된다. 쓰지 않고 살아도 된다. 학창시절 나는 피구를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잘 피하고 끝까지 살아남아야 이기는 이 게임. 나는 쉽게 잘 죽었다. 요리 조리 최대한 피하기만 해도 잘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데, 자꾸 공을 잡으려다가, 공을 잡아서 상대편 친구도 맞혀이기고 싶어서, 그러다 빨리 잘 죽었다. 빨리 ‘죽더라도’ 나는 항상 손을 뻗어보고 깨져보면서 살았던 것 같다. 요령도 모르고 그렇게 살았다. 그냥 내 감정을 안 보고도 살 수 있을 인생, 쓰지 않아도 ‘생활’만으로도 충분히 다들 사는 이 인생. 그치만 그냥 나는 조금씩이라도 꺼내보는 쪽을 택한다. 그게 오히려, 결국엔, 더 마음이 편해지는 길 같아서. 꺼낸 다음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어서. 자꾸 이런 저런 얘기를 쓰고 싶은 것 같다. 괜찮을 것이다. 쓰고나서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늘 글쓰는 일은 내게 한톨도 아깝지 않은 일이라서.
2024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