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그리고 운에 대하여

내 맘대로 안되는 인생, 그래서 오히려 편하기도 해

by 은준



대학을 총 두 곳을 다녔다. 스무살에 입학한 신문방송학과. 3월 초부터 일찌감치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님을. 흥미 없는 이 과에 적응을 못한 나는 대책도 없이 밴드부 활동에 빠져 살았다. 필수과목 빼고 국문과 수업만 주구장창 듣던 나, 결국 타 대학 국문학과로 편입을 하게 됐다.


새로 입학한 곳에서의 낯선 생활. 학업도 물론이지만 새로운 학과에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걱정할 새도 없이 오리엔테이션때부터 너무 잘 맞는 친구를 만났고, 개강파티에서 친한 친구 두 명을 더 사귀게 되어 2년 내내 넷이서 재밌게 붙어다니며 행복한 대학시절을 보냈다. 또 도서관 근로알바를 하는 동안 평생의 친한 동생들 또한 만났다.


첫 번째 대학에서는 동아리 친구들 외에 학과에는 친한 친구가 없었다. (과생활을 안해서 못 사귄 건지, 못사귀니 과생활을 안하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 전의 학교에서보다 새로 입학한 곳에서 더 친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고, 지금도 끈끈하게 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한 게 있나.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은 시기마다 어떤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비슷했다. 나라는 이 똑같은 사람을 어떤 이들은 좋아하고, 어떤 이들은 무심코 대했다. 좋은 친구를 만난 것도, 그렇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던 것도, 내겐 우연의 힘이 더 크게 느껴진다.


직장도 그랬다. 지금 하고 있는 분야에서 일한 곳은 총 다섯 곳. 두 곳은 뭐랄까, 직장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했다. 사람들이 대부분 좋으셨고, 순한 사람들이 많았고, 분위기도 밝았다. 내게 호감을 보이고 나라는 사람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한 곳은 그냥 저냥 무난했고, 두 곳은, 헬이었다.




인생은 운이라는 말,

예전엔 이 말이 왠지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언젠가부턴가 이 말을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편하다.

내가 뭘 다 짊어지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마냥 운에 기대 살고 싶다는 건 아니다.

‘운도 노력하는 사람을 알아보는거야’

이 말에 동의를 하기에 내가 할 부분은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러나 노력보다는 운의 힘이 더 세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이유없이 사랑받을 때가 있었고, 이유없이 미움받을 때도 있었다. 이유없이 사람들이 다가올 때가 있었고, 이유없이 어느 순간 사람들이 곁에 사라지곤 했다.


내 외로움에, 내 불행에 답을, 원인을 찾으려 할 때가 많다.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관계에 있어서 한 때 내가 잘나서 사람들이 나를 찾은 게 아니듯이 지금 내가 못나서 나를 찾지 않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냥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부단히 애써 노력하지 않는 자의 합리화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근데 노력보다 운이 더 크다 생각하면 내가 나를 덜 자책하게 된다.

잘 나갈 때도 겸손할 수 있을 것 같고, 못 나갈 때는 나를 더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 더 고맙고, 뭇사람들이 내게 관심이 없다고 미워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들어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인생은 운빨이야~ 하고 대책없이 운에만 맡기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 수 없는 그 운이라는 것이 있기에 힘든 시간이 마냥 계속 이어지지 않을 것도 같고, 그러기에 너무 의기소침할 필요도, 위축될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 그래서 오히려 더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다 하지 않아도 되니까. 특히나 관계문제는 더더욱 더. 그러니 자책일랑, 불평이랑 잠시 접어두고 가슴 펴고 맑은 9월 하늘이나 실컷 올려다보자. 내가 걱정을 하든 웃음을 짓든 하늘은 늘 같은 자리에 있다.




2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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