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
만 권 안 되는 도서를 소장하고 있는 작은 우리 도서관. 그 몇 천 권의 책들을 하나 하나 다 훑어볼 기세로 눈으로 살피고 손으로 만지며 30분이고 40분이고 고심 고심해서 책을 고르는 이용자분들을 가끔 본다. 그렇게 신중하게 천천히 책을 고르는 분들이 좋다. 나 또한 다른 도서관에 가면 그런 이용자들 중 한 사람이며.
이런 분들 보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장을 펴서 문장을 눈으로 머리로 입력하는 행위만 말하는 게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에 문을 열고 들어와 서가 사이를 걷는 순간,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 어떤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라 도서관 홈페이지에 자료를 검색해 청구기호를 메모하고 도서관에 들를 일정을 잡는 순간부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고르고 책을 볼 생각에 설레하고 또 생각지도 못한 책을 만나는 일까지, 넓게 보면 모두 ‘책을 읽는’ 기분 좋은 과정들이 아닐까.
책 속의 좋은 구절들과 함께 추천도서로 전시해놓은 책은 그냥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보다 대출율이 훨씬 높다. 전시한 책을 대출하기 위해 데스크로 가져오시는 이용자분에게 괜시리 내적 친밀감이 생기곤한다. ‘이 분도 나처럼 이 책과 함께 좋은 시간 보내시겠다’하는 생각을 하며. 물론! 취향이 다 다를수도 있겠다. 아무렴 어떨까. 그렇게 책을 찬찬히 고르는 분들이라면 분명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일테고, 실패의 독서경험 또한 다양한 독서과정으로 여기실 분들이라 믿는다.
책을 좋아하고 책으로 사람들과 조용한 소통을 나누는 걸 좋아하는 걸 보면 이 사서라는 직업은 나와 꽤 잘 맞는 것 같이 보인다. 맞다. 어느 정도는 잘 맞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이 도서관 일, 내게 싫지는 않은 일이나 가슴 뛰는 일은 아니다. 사서자격증 취득 후 이십 대 때 처음 도서관에서 일하던 그때의 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나? 열심히 하고 있나?’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이것도 저것도 재지 않고 그냥 일에 뛰어들어 지냈던 시간들이었다. 지금은 그 열정이 많이 바스라졌다. 이용자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책을 구입하고 등록하고 정리하는 것]보다 내가 [읽고 쓰는 걸] 더 좋아하는 인간이다.
“이것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고전적인 저주의 형식을 닮았다. 너는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소설 쓰기에 대한 얘기를 해도 좋다. 그러나 절대로 그 시간에 네 자신의 소설을 써서는 안된다. 너는 다른 사람의 예술에 대해 얼마든지 말해도 좋다. 신나게 떠들어라. 하지만 그 시간에 네 소설을 이야기하거나 그것을 써서는 안 된다. 나는 그 저주의 대가로 월급과 연금을 보장받고 꽤 쏠솔한 출연료를 받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뒤통수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기분이었다. 쉬익쉬익, 기분 나쁜 바람소리가 들렸다.”
- 김영하, <오래 준비해 온 대답>
어제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 꼭 요즘 내 맘 같은 구절을 만났다.
이런 생각, 그래, 나만 하는 건 아니구나~ 위로가 됐다. 그러나 나는 김영하가 아니기에. 김영하 작가는 교수일, 방송일을 하지 않아도 전업 작가로 돌아 가서 좋아하는 소설을 실컷 쓰면 된다. 나는 읽고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할 생각까지도 모르겠고, 할 능력도 없기에 좋아하는 취미로 둔 채 지금의 일에 나름 만족하고 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 심장에 문제 있는 거고(?), ‘싫지 않다’는 정도의 느낌도 나쁘지 않음을, 이제는 안다.
그렇게 이십대 후반부터 여러 도서관을 전전했다. 주로 기간제 근로자 신분으로 살았다. 내가 취득한 준사서 자격증으로는 정규직 자리가 잘 없었고, 사서 일에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밥벌이하는 걸로 족했던 것 같다. 지금도 월급은 24년도가 맞나 싶을만큼 믿을 수 없이 적다. 그렇지만 돈이 적은 만큼 아주 큰 책임과 권한이 부여되는 자리도, 높은 전문성을 요하는 자리도 아니다. 하고 싶은 게 뚜렷하게 있는 게 아닌 이상 이 편이 차라리 편했다. 돈도 더 많이 벌고 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 좋겠지만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어떤 회사에 가고 싶다, 직업으로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다, 같은 생각이 크게 없었다. 마음 맞는 사람과의 대화, 읽고 쓰는 것, 여행하는 것 말고 내가 하루 8~9시간 동안 계속 하고 싶은 일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작가나 여행가를 직업으로 삼고 도전하기에는, 그 정도의 열정과 자신 또한 없고. 먹고는 살아야하기에 너무 싫지 않은 일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를 뽑아주는 곳에서 줄곧 일해왔던 것 같다.
그치만 그 와중에 고민은 계속 됐다.
그렇게, ‘싫지 않은’ 정도의 이 도서관 일을 하며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은 뭘까? 계속 생각하곤 했다.
진로 고민.
정말 오랫동안 내 인생의 키워드였다. 나의 천직은 뭘까, 나는 어떤 일이 제일 잘 맞는 걸까. 수도 없이 오랫동안 고민했다. 답을 아직도 모르지만 몇가지 알게 된 건 있다. 천직 같은 건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오는 행운 같은 거라는 거. 수십년 째 진로고민을 한다는 건 어떤 분야에 재능이 특출나게 있지는 않다는 것, 아주 좋아하는 분야가 있더라도 그것에 뛰어들 용기는 있지 않다는 것.
내가 뭘 정~말 잘하거나, 또 크게 잘하지는 않더라도 좋아하는 어떤 분야에 이것 저것 재지 않고 뛰어들 용기가 있었더라면 그 분야로 갔을 것이다. 나는 이쪽도 저쪽도 아니기에 그저 그럭저럭 싫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왜 이것도 저것도 가지지 못했나,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지금은 반대의 생각이 든다. 오히려 고맙다. 이런 애매한 나 같은 사람이 돈 벌 수 있는 이 직장에. 매일 단골처럼 오시는 이용자분들도 더 고맙게 느껴진다. 박봉이지만 그만큼 퇴근하면 땡하고, 일에 대한 스위치를 끌 수 있다. 많이 안 바쁠 때 좋아하는 책을 볼 수 있다. 돌아보면 책이 있고 돌아보면 서가가 있다. 좋아하는 것 근처에서, 좋아하는 걸 어떤 형태로든 다루며 일하는 지금도 충분히 감사하다.
게다가 천직이든 뭐든 못 찾으면 뭐 어떤가. 맛있는 점심 사먹을 수 있고, 좋아하는 책 살 수 있고, 가족들과 여행도 가끔 가게 해주는 직장이 있다. 책읽기, 글쓰기, 가끔 여행. 비록 직업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게 참 많아 퇴근하고, 또 주말에, 좋아하는 그 취미들을 하며 사는 것 또한.
2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