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싫다

by 은준


아무 일이 없더라도 명절은 그냥 싫다. 어릴 때 명절만 되면 늘 우리집은 싸웠다. 안그래도 자주 싸우는집, 명절만 되면 특히 더 그랬다. 엄마는 설, 추석이 다가올 즈음엔 예민함이 극에 달하셨다. 혹독한 시집살이의 영향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나서도 고모들과도 사이가 안 좋아 엄마와 고모들은 결국 대판 싸웠고 아빠는 고모들과 그때부터 인연을 끊고 살았다. 인연을 끊고 산 이후에도, 싸울 상대가 이제 없어졌음에도 우리집은 명절만 되면 살얼음판이었다. 그 안에서 우리 네자매는 늘 불안을 깔고 살아왔던 것 같다.

우리집 분위기의 영향때문인지, 나 또한 명절이 다가오면 별일이 없는데도 그냥 방어적이 되는 것 같다.

엄마를 통해 내 머릿속엔 이런 인식이 박힌 것 같다. '시댁은 나쁘다, 명절은 나쁘다'

시댁자체가 나쁜 것도 명절 나쁜 것도 아닌데.

여자들만 많이 노동하는 잘못된 유교문화는 확실히 나쁘다. 그럼에도 나는 명절과 시댁에 대한 알게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선입견이 확실히 있었다.

막상 결혼하고나니 명절 때 우리집처럼 다 싸우는 건 아니구나, 알게 됐다. 보수적인 경상도 집안이긴하지만 명절때 시댁분들이 다 모이면 대부분 항상 즐겁고 밝은 분위기다. 가족들 간에 사로 다 사연은 없지 않아 있지만 적어도 다 모여서 이렇게 있을 때는 화기애애하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명절이 여전히 싫다.

너무 좋으시고 우리 아빠같이 나를 예뻐해주시는 아버님이 나도 너무 좋지만, 어머님만 온종일 음식하는 이 썩은 문화가 참 싫다.

엄마는 아빠와 평생을 그렇게 싸우며 살았으면서도 가끔 이런 말을 했다.

"둘이만 있었음 괜찮았지. 시어머니가 시집 살이만 안 시켰어도 명절때 시누이들 먹을거까지 내가 맨날 차리고 그런것만 안했어도 너거아빠랑 싸울 일 없이 잘 살았을긴데."

제 3자, 제3의 그런 문제들이 없었어도 두분은 많이 싸우셨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 횟수가 더 적었을 것 같긴하다.



2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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