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그리고 나의 쓸모

by 은준


얼마 전 밤 9시가 다 되어 갈 무렵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누군가 하고 나가보았는데, 우리 동에 사시는 이웃분께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들고 계셨다.


며칠 전 밤이었다. 아마 주말이었고 시간이 12시~1시쯤 됐었는데, 나는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다가 엘리베이터에서 한 이웃분을 뵀었다. 시골에 계신 시부모님이 몸이 많이 다치셔서 남편이 모시러 갔고, 이제 올 때 쯤 된 상황이라 병원을 모시고 가야할지, 일단 집으로 와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어쨌든 급하게 전화를 받고 소통을 해야 되는 상황인 듯 했다. 근데 문제는 휴대폰이 터치가 고장났는지, 쉼없이 남편 분이 전화가 오고 있는데 안 먹히는 터치 때문에 전화를 못받고 있어 답답해하는 상황이었다. 처음 보는 내게 걱정 한 가득 표정을 안은채 자초지종을 얘기하시는데 뭐라도 도와드리고 싶었다.


아주머니는 내 폰으로 남편한테 전화 한통 걸어주실 수 있냐물으셨고, 당연히 빌려드릴 수 있는데 그때 나는 잠깐 쓰레기 버리러 나온 상황인지라 폰이 없었다. 마침 지나가는 청년이 있어 그 아주머니께서 전화 한 통 쓸 수 있냐고 물으니 그 분도 "저 폰 없는데요"하며 빠르게 지나쳐가버렸다. 안되겠다 싶어 재빨리 집에 가서 폰을 가져와 빌려드렸다. 아주머니께서 너무 고마워하셨고, 나는 아니라고 얼른 가서 어르신 잘 보살펴드려야겠네요, 하고 인사드리고 헤어졌었다.


그날 너무 고마웠다고 애기랑 먹으라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오셨다. 시어르신이 그날 상태가 안 좋으셨는데 다행히 치료는 잘 됐고, 아무튼 너무 고마웠다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빌려드리지 않았어도 조금만 걸어가면 경비실, 관리소가 있고, 편의점도 있고, 여기가 산골 시골도 아닌지라 가족분과 연락할 방법은 그리 어려운 건 아니였을 것이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선물까지 주시니 감사하면서도 민망했다. 한사코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거절을 거절(?)하시며 밀어넣으셨다..


그냥, 통화를 할 수 있어서 고마운 것도 있으셨겠지만 답답하고 애타셨던 것 같다. 그 상황에 내가 우연히 옆에 있었고, 이야기를 들어드린 게 아마 더 고마우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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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쯤부터인가, 누구 하나 걸려라(?)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 같다. 길가다, 또는 어디 야외에 놀러갔을 때 등 뭔가 도움이 필요해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상황이 있으면 많이 무리되지 않으면, 너무 바쁜 상황이 아니면 최대한 도와주려 노력한다. 시간내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데, 시간만들어낼 정도의 열정은 아직 없고, 여유도 없어서, 대신 '생활 속에서' 누가 내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내 눈에 도움이 필요해보이는 상황이 있으면 흔쾌히 해야지, 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내가 뭘 한 게 아니고 아주머니께서 잘못(?) 걸리신 것 같다. '-' 그냥, 돈드는 것도 아니고 긴 시간을 뺏기는 것도 아니고, 놀리니 뭐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니까. 조금은 내가 세상에 쓸모가 있구나,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그 기분이 좋아서 내 일상에, 내 생활에 아주 큰 피해나 소모가 없는 걸 알기에 그런 일을 가끔 할 뿐이다. 오히려 그런 간단한 도움에 보답을, 표현을 하시는 아주머니가 더 대단하신 분 같다.



그런 종류의 일 중에 쓰레기줍기도 있다.


아이랑 돌아다니다보면 놀이터, 산책길, 공원, 곳곳에 쓰레기가 눈에 띌 때가 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나 내키는대로 사는 인간인지라 내가 줍고 싶을 때는 줍지만 피곤하고 귀찮을 때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 한 날은 동네 정자에 누가 컵라면, 과자봉지, 음료수 등을 먹고 너저분하게 다 흐트려놓고 간 상태였다. 애랑 돌아다니는 것도 체력딸리는데 남이 먹은 것 치우는 데까지 안그래도 없는 내 에너지 쓰지말자며 그날도 흐린 눈 하는 중이였다. 근데 우리 아이가 쓰레기들 보며 말했다.


"엄마, 우리 같이 이거 쓰레기통에 버리자"


아이랑 손잡고 아기 때부터 산책할 때 몇번씩 내가 쓰레기를 줍는 걸 봐서 그런지, 이제는 아이가 먼저 얘기할 때가 많다. 애기가 먼저 그러는데 어떻게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제는 이렇게 타의로도 하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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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남편에게 말해주면 남편은 나를 흐뭇하게 보면서도 알쏭달쏭한 표정도 함께 짓는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근데 왜 집은... 가족은...." 하며 놀린다.


집은 난장판인데 왜 밖에 길거리 쓰레기를 주워, 남들 돕는 것도 좋은데 나부터 좀 더 챙겨줘 하는 눈빛이다.


"왜~ 안하는 거보다 낫지 않아~?"


살짝 억울하고 변명하고픈 마음이 먼저 올라오다가 곰곰 생각해보면 그러게 말이지.. 싶기도 하다.


나는 왜 매일 보는 가족, 본가, 시가, 친한 지인들한테도 그렇게 잘 하는 사람, 자식, 형제, 며느리, 아내, 친구도 아니면서, 얼굴도 모르는, 한번 보고 말 사람들한테는 그런 마음을 내려하는 거지. 나도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이거야말로 허세고 허울이 아닌가. 실은 남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족이고 젤 잘하면 좋을 사람들도 가족인 걸 아는데.


모르겠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냥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을 주면서 살고 싶다는 것도 내 자연스러운 마음인 것 같다. 제일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고픈 사람, 잘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가족인 걸 알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마음대로 있고, 그냥 아예 모르는 사람, 환경을 위해서도 뭐든 돕고 싶은 마음도 내 안에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간편하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다. 받을 걸 계산하고 돌아올 걸 기대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다. 아는 사람과의 경우엔 복잡하다. 감정이 들어간다. 늘 부대껴 있는 이들에게 일상적으로 꾸준히 잘하는 것보다 한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되는 게 더 쉽다. 관계를 잘 이어나가는 건 어렵지만 '한번'은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쉬운 걸로, 간단한 걸로 쉽게 쉽게 만족감을 얻고 싶은 내 욕구인걸까.



이 모순같은 감정을 알고, 안고 그냥 그때 그때 내 마음이 가는대로 일단 지내봐야겠다. 남편이 내게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실은 중요한 말, 사실은 가까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게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어려운만큼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 나와 가족들을 제일로 챙기되, 쓰레기도 가끔 줍고, 누가 내게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도와주면서. 가족이 1순위지만 우리가족, 남. 이렇게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환경 지키고 남을 돕는 일 같은 게, 우리 가족과 나에게 결코 나쁘게 돌아오지는 않는 일일테니까.


아무튼 이런저런 너무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내가 뭘 거창하게 세상을 돕거나 하고 있는 건 없기에. 고작해야 어디 들어갈 때 뒷사람 문잡아주기, 쓰러진 입간판 세우기, 쓰레기 가끔 줍기, 버스에서 할머니 짐들어드리기 같은 것 같은 아주 간단한 일들이라서 ! 기부천사 션같은 사람이 들으면 귀엽다할 것 같은 이야기.. ㅎ 내가 가족들 덜 챙기고, 우리집이 엉망될까 지금으로선 남편이 전혀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ㅎ

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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