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을 모으는 시간
언젠가 보배가 되는 날이 오겠지
얼마 전 퇴근 후 가족들과 동네 도서관에 들렀다. (규모도 예산도 작은 우리 도서관에 없는 책을 빌려보러 퇴근하고도 종종 다른 도서관에 가는 나.. ) 이 도서관의 특색 중 하나, 독립출판물 코너가 따로 있다. 여러 도서관에서 예전보다는 독립출판물을 많이 수서해 비치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반출판물에 비해 그 숫자는 현저히 적다. 그런 와중에 이 도서관은 독립출판물 코너까지 따로 비치하고 있으며, 장서도 꽤 되는 편이라 독립서점에 시간 내어 가지 못할 때 근처 도서관에서라도 이렇게 책들을 구경할 수 있어 참 좋다.
원래는 빌릴 책만 빨리 대출해서 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곧장 가곤 하는데, 이 날은 남편과 아이도 같이 온 터라 찬찬히 책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읽고 싶었던 책, 읽었던 책, 신기한 책, 특색있는 책.. 신나서 쭈욱 독립출판물을 보다 한 서가 앞에서 순간 멈칫했다. 한 7년 전 쯤 글쓰기 모임을 같이 했던 분들과 공동으로 출판한 책이 있었다. 몇몇 독립서점에 갔을 때 꽂혀 있는 걸 본 적은 있지만 도서관에 소장된 걸 본 적은 처음이라 놀랬다. 인기가 있는 것도, 유명한 것도 전혀 아닌지라 도서관에까지 있을 줄은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비록 10명 가까운 분들이 함께 쓴 공동 저작물이지만 내가 쓴 글이 든 책을 도서관에서 마주하는 기분은 정말, 정말 묘했다. 묘한 감정보다 더 컸던 감정은 민망함이었다. 글이 얼마나 1차원적이고, 직접적이며, 납작한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때의 글은 많이 심각하다. 마지막 초단편 소설이라고 쓴 지구멸망 이야기를 읽을 땐 낯이 뜨거워서 그 책을 몰래 훔쳐 불태워버리고 싶었다.
7년 전 친구가 알려 준 한 오프라인 독서모임이 있었다. 신청을 하려는데 아쉽게 마감이 되었고, 글쓰기 모임은 아직 자리가 있다하여 그렇게 우연히 신청하게 된 모임. 혼자 읽는 것도 충분히 좋지만 그 즈음 나는 누군가와 같은 책을 읽고 감상이나 의견을 나눠보고 싶은 생각이 컸다. 정작 하고 싶은 건 독서모임이었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엇이든 함께 활동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때라 글쓰기모임이라도 그래 하자, 하는 마음으로 신청을 해버렸다. 신청을 해놓고도 크게 기대는 없었다. 글쓰기라.. 그냥 혼자 해도 되지 않나. 굳이 모여서 할 필요가 있을까. 그 전에도 제대로 글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10대 때부터 일기나 잡다한 생각들을 노트나 다이어리에 늘 쓰곤했었다. 그러나 무언가를 늘 쓰긴 했지만 한 편의 ‘글’이라는, 무언가를 완성한다는 느낌의 행위는 아니었다. 꼭 완성을 해야한다는,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이 그렇게 나의 첫 글쓰기 모임은 시작됐다.
독서모임 가고 싶다던 나, 막상 시작된 글쓰기 모임이 어쩌나, 너무 재밌었다. 그냥 다같이 둘러 앉아 일정 시간동안 각자 글을 쓰고, 끝나고 낭독을 한다. 지적은 절대 하지 않고 감상 또는 칭찬만 하는 게 이 모임의 규칙이었다. 아무도 뭐가 틀렸다, 이상하다,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데도 모두 글쓰기를 더 잘하고 싶어하게 되고, 더 재미를 느끼고, 또 더 글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글쓰기에 더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이. 이따금 이런 저런 걸 쓰게 된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재밌는 것과 별개로 그 모임을 통해 작은 충격도 받았던 것 같다. 그 당시 일도 아이들 독서 논술지도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늘 무언가를 쓰는 걸 좋아하긴 했던 터라 은연 중에 나도 모르게 글에 있어서는 이상한, 근거없는 자신감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첫 모임, 두 번 째, 세 번 째 .. 모임이 이어지며 알았다. 아! 나는 우물 안 개구리구나!‘ 하고. 톡톡 튀는 글을 쓰는 분, 꼭 시 같은 에세이를 쓰는 분, 난해한데 뭔가 끌리는 글을 쓰는 분.. 그냥 나 빼고는 다 잘 쓰는 것 같았다. 글에 누가 잘 쓰고 못 쓰고 그런 게 어딨나 싶으면서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 때 쓴 글들이 ‘글이다~’하고 쓴, 어쩌면 살면서 제대로 처음 쓴 글들이라 어색하고 오글거리기도 하고 맘에 차지 않는 것 투성이이면서도, 그때 쓴 글들을 기념으로 출판하자는 의견에 그냥 큰 생각없이 같이 참여하기로 했다. 참여한 분들 중 한 두 분은 출판은 빠지겠다고 했었는데, 나는 왜 그때 그런 현명한(?!) 생각을 못했을까. 기념도 좋긴 한데, 글은, 책은, 남는 것. 기어코 나는 자비를 들여 흑역사를 생산하고야 만 것이다. 각자 딱 ‘그 시절’에만 쓸 수 있는 글이 있음을 안다. 글을 어느 정도 잘 쓰게 될 때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지, 하다 아무것도 못 만들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치만 이 책 속 나의 글들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는 건 왜 이리 부끄럽고 민망한지. 하지만 그것 또한 경험이겠지. 그나마 나의 이름을 걸고 정식으로 혼자 출판한 게 아니라 다른 분들에게 묻어갈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려한다. 이 책 제가 참여한 책이에요,하고 말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른다는 게, 부끄러움이 나만의 몫으로 남을 수 있어 또 얼마나 다행인지.
언젠가 나도 책이라는 걸, 내 이름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완벽에 가깝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은 미완의 단계에서지만 ‘그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해, 내보고 싶기는 하다. 그래야 훗날 다시 그 책을 펼쳐봤을 때 '아, 이때는 이런 생각을 했네, 지금은 내가 생각이 좀 달라졌구나. 그래도 이 당시에 이런 감정을 가졌던 것, 이런 생각을 가졌던 것, 모두 존중해. 이런 시도들, 도전들 소중하다..' 같은 생각들을 할지라도, 눈뜨고 읽기 어렵게 숨고 싶은 그런 마음은 들지 않을테니까..
얼마 전 브런치 글이 어느덧 100개가 모였다. 브런치북도 좀 더 정성스레 묶고, 연재도 하고, 공모도 내보고 그래야할텐데, 구슬이든 뭐든 꿰어야 보배라는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저 모으기만 하고 있다. 인기있거나 출판으로 이어지는 분들 보면 대부분 딱 하나 컨셉을 잡고 그 컨셉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던데 , 나는 나 쓰고 싶은 것만 그냥 내키는대로 쓰고 있다. 그냥 이렇게 쓰는 것만으로도 재밌어서 그것만으로도 1차적으로 나의 글쓰기의 목적은 달성했기에 그 이상의 무언가를 더 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언젠가 각잡고 무언가를 만들어 볼 시간과 여유, 생기면 좋ㄱ... (생기려나?) 그냥 지금은 아무 생각없이 계속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응시하고, 풀어보고, 정리하고 싶다.
24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