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함께 한 하루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by 은준


출근길부터 마음이 바빴다. 비록 규모도 작고 이용자도 적은 우리 도서관이지만 우리 문학의 유례없던 이 성취를 이용자들과 나누고 싶었다. 몇 권 없는 한강 작가님의 책, 아마 다 대출이 될 것 같아 실물 책 대신 책 소개를 위해, 표지라도 인쇄하여 전시해보기로 했다. 표지를 프린트하고, 각 책마다 좋은 구절을 뽑아 소개하는 자료를 만들고, 시도 한 편 시화처럼 예쁘게 꾸며 벽에 붙이고, 작가님 소개 자료를 만들고, 인쇄, 코팅, 오리고 자르고를 반복하니 거의 하루가 다 갔다. 이용자분들 입장에서는 쭈욱 훑어보면 몇 분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자료들임에도, 만들고 꾸미는 데에는 몇 시간이나 걸린다. 집에 오니 간만에 육체적으로 진이 확 빠지고 피로가 몰려왔다. 누가 하라한 것도 아닌 일.. 일하다 급 피로가 몰려와 중간에 한 번 현타가 올 뻔 했는데 다른 건 몰라도 노벨문학상이라니, 작게나마 도서관에서도 축하를 하고 싶었다. 뉴스에, 인터넷에 온통 한강으로 도배되는 요즘, 굳이 이렇게 도서관에서 작가 소개, 책 소개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래도 우리 도서관에 들어오시는 분들이, 이 공간에서도 수상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또 도서관에서 일하며 한국 작가분이 노벨문학상을 타는 일, (이번 수상이 물꼬가 되어 앞으로도 또 생길 것 같긴 하지만!) 살면서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닐 것 같아서, 내 자리에 있는 동안 이 기분 좋은 경사를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른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몇 년 전 읽은 <채식주의자>가 내가 읽은 한강 작가님의 처음이자 유일한 책이었다. 첫 책이 너무 강렬했었나보다. 읽으며 상상력도, 표현도, 너무 대단한 작가님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 당시 내게는 여러모로 버겁고 충격적이었다. 그 뒤로 한강 작가님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지, 생각은 했지만 이상하게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이미 내 안도 너무 무겁기에, 너무 무거운 얘기, 아픈 얘기, 일부러 안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종종 한강이라는 이름은 책을 좋아하는 내게는 자주 보였고, 들렸다. 이 땅 현실의 아픈 이야기를 쓰면서도 여기가 아닌 어디 저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시선, 글만큼이나 섬세한 듯 보이는 분위기, 조금 생기없어 보이는 인상. 한강 작가를 떠올리면, 다른 작가들과는 조금은 다른 것 같다. 다방면에서 활약하기도 하는 요즘 작가분들과 달리 글이라는, 자신에게 있어 본질적인 것 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달까. 선하고 여리고 차분한 분 같지만 그 누구보다, 다른 누구도 가닿지 않았을 저 깊은 곳의 고뇌까지 한 가득 해본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그런 얼굴이어야, 그런 마음이어야 '노벨문학상'이라는 걸 받을 수 있는 걸까. 예술의 어느 경지에 다다르려면, 나와 다른 이들의 고통을 깊숙이 응시하고 아파하고 끌어안아야하는 걸까.


이틀 내내 너무 벅차고 기쁜 마음이 넘쳤다. 그러다 이상하게 한강 작가님의 얼굴이 생각난다. 내가 뭐라고 참. 수상의 기쁨도 크겠지만 온 세상이 자신을 주목하는 이 시간이 작가님에게 마냥 즐거운 시간은 왠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관종’의 기운이 1도 없어 보이는 분 같달까. 노벨문학상이라는 작가님의 대단한 성취가 우리들에겐 너무 감사하고 좋지만 그냥 작가님이 맛난 거 많이 드시고, 행복하고, 오래 오래 건강하셨음 좋겠다. 채식주의자 다음으로 몇 년만에 읽는 한강 작가님의 책 『노랑무늬 영원』 . 오늘 그 중 「파란 돌」이라는 단편 하나를 읽었는데, 너무 좋다. 작가님의 좋은 글 살면서 계속 많이 보고 싶다. 그런데 좋은 글 더 보지 못하더라도, 작가님이 행복하시면 그걸로 족할 것 같다.




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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