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동네 복지관에서 취미로 요리 수업을 들었다. 대부분 연령대가 5, 60대이셨고 그렇게 이모, 엄마 뻘 되는 언니들과 함께 재밌게 요리 배웠다. 수업은 조별로 진행을 했는데 우리 조 언니들이 너무 유쾌하고 재밌는 분들이라 그런지 나이가 20~30살이 남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같이 수업 듣는 시간이 내내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중간에 새로 들어온 수강생 한 분이 있었는데, 우리 조가 제일 인원 수가 적어 강사님이 그 분 보고 우리 조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삼십대 중반, 다른 언니들은 모두 5, 60대였으며, 그 새로 들어온 수강생 분은 40대 정도로 보였다. 그 분이 우리 조로 걸어들어오는 순간부터 소녀처럼 깔깔 웃고 유쾌하던 우리 조 언니들 사이에 왠지 낯선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 공기에 적당한 이름을 붙인다면 ‘경계’ 또는 ‘시샘’ 정도가 될까. 뭐랄까, 새로 왔다는 수강생 언니는 일단 키가 컸고, 날씬했고, 얼굴도 예쁜 편이셨다. 그 분이 잠깐 그릇을 가지러 갈 때, 가스불 쪽에 갈 때 언니들은 그 언니에게 눈을 흘기기도 하고, 그 언니를 쳐다보면서 원년 멤버 언니 둘이서 속닥속닥하기도 하셨다. 그냥 내가 봐도 그 언니가 뭘 하는 걸 못마땅해하고, 텃세 아닌 텃세를 부리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가끔 그 때 생각이 한번씩 나는 건, 텃세(?)를 당할 때의 그 분 태도 때문이었다. 뭐랄까, ‘니들은 짖어라~ 나는 내 갈 길 간다.’의 느낌이랄까. 그 분은 그냥 씩씩했다. 같은 조 언니들이 자신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님을 모르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냥 씩씩하게 음식을 만들었다. 그것도 웃으면서. 은근한 따돌림과 텃세에 위축되어 억지로 씩씩하게 힘내야지, 하는 그런 느낌도 아니었다. 그냥 ‘그러던가 말던가’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조 언니들이 그 언니에게 텃세 부리는 느낌이 일절 사라졌다. 어느 순간 그냥 같이 하하호호 웃고 떠들고 있었다. 알고보니 이 뉴페이스 언니는 40대가 아니라 50대였고 곱상한 외모와 달리 젋었을 때부터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밑바닥부터 안해 본 것 없이 고생도 많이 해왔고 이제는 번듯하게 자기 사업도 꾸리며 살고 있는 분이셨다. 자기는 지금도 0에서 시작해도 뭘하든 잘 할 자신이 있다 말하면서. 그 언니의 인생얘기를 들으며 조 언니들과 나는 그 언니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언제 그렇게 텃세를 부린 적이 있었냐는 듯이. 그 언니는 그냥 자기 삶에 충실하게 사는 분 같았다. 그러니 누가 자기를 뒷담화하든, 경계하든 그러거나 말거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거다. 남들이 나를 두고 뭐라하든, 어떻게 대하든 내가 거기에 의의를 두지 않아버리니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는 듯한 모습을 눈 앞에서 나는 지켜보게 된 것이다.
또 예전 직장 다닐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내 또래 한 여자 직원분이 있었다. 그 분과 그리 친한 건 아니라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일단 대화할 때 말이 조금 어눌하고, 수줍음이 아주 많아 보이고, 긴장을 아주 많이 하는 분이었다. 조직안에서는 저절로 알게 된다. 누가 누구를 싫어하는지, 누가 이 조직의 왕따인지. 대놓고 말은 안해도 다 그분을 싫어하는 게 느껴졌다. 몇몇 직원들 무리가 모여서 누군가를 뒷담화하는데 그 분 이름이 중간중간 계속 나오는 것도 몇 번 들었다. 그 분이 일을 빠릿빠릿하게 센스있게 잘하는 스타일은 확실히 아니어보였지만, 업무능력을 떠나서도 사람들이 그냥 인간적으로 그 분을 무시하는 게 느껴지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평소에 그 직원 분을 별로 안 좋아하는 듯 보이는 상사 두 분이 그 직원 없는 자리에서 그 분 얘기를 하며 ”왜~ 00이도 잘한다 왜 ~“ ”그래~ 맞다~ 하면 또 잘한대이~“하며 괜히 추켜세우는 얘기를 하는 거였다. 누가 봐도 그 분은 이 조직에서 '은따'였다. 그런데 어느 날은 또 뜬금없는 칭찬을 하기도 하는 거였다.
그냥 그 때 나는 조금 놀랐던 것 같다. 무엇에 놀랐는가. 내가 만약 그녀 입장이라면. 그 분도 조직에서 다 자기를 은근히 무시하고 잘 끼워주지도 않고 그런다는 걸 알고 있을거다 아마. 그런데 나를 그렇게 은근히 무시하는 이들의 입에서 밑도 끝도 없이 특별한 이유없이 어느 날은 칭찬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나는 이렇게 느껴졌다.
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구나. 나에 대한 평판이란 그냥 호떡 뒤집듯 뒤집는 그냥 가벼운 별 거 아닌 것일 뿐이다, 라고.
물론 남들이 나를 판단하는 것 중에 나 자신이 불편하고 나 자신도 우러나와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노력할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다 싶네, 하는 마음이 들었다.
흔히들 말하는 ‘남 의식하지 그만 하세요, 자기를 챙기세요. 남 눈치 볼 필요 없습니다.’ 같은 말. 그 뻔한 말이 그 날 마음에 확 제대로 새겨지는 느낌이었다.
누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을 때, 나를 배제하는 것 같을 때, 너무 위축될 필요 없을 것 같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평가는 언제든 바뀔 수 있을만큼 쉽고 가벼운 거고, 그 얄팍한 기준에 내 기분을 내어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남들의 평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요리 수업 때 뉴페이스 언니처럼 그냥 내 할 일, 내 삶에 집중하면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남들의 나에 대한 평가, 뒷담화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겠지. 그 언니 정도의 멘탈, 그 단계에 언제쯤 올라가려나. 그런 건 한번에 되지 않겠지. 그냥 매 순간 나도 내 삶에 충실해 보는 것, 그것부터 해봐야겠다!
24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