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냥 내게는 하나뿐인 사람

by 은준


아빠와 생전에 영화 두 편을 함께 봤었다. 그 중 하나가 <변호인>이었다. 함께 영화를 보던 그날 예매 시간에 맞춰 롯데시네마로 향하는 택시를 함께 탔다. 아빠는 딸과 함께 처음으로 영화관 가는 길이 기분 좋아보이셨다.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우리 아빠. 중국영화, 액션 영화 가릴 것 없이 케이블 채널이 없던 시절엔 주로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서, 또 이후엔 ocn 등 영화 채널로 쉴 때는 늘 영화를 보던 아빠. 돈 버느라 바쁘셔 젊을 때 이후로 거의 극장엔 못 가다 이렇게 오랜만에 극장에 가는 게, 말은 하지 않으셔도 기분이 좋아보이셨다. (영화를 그렇게도 좋아하는 아빠인 걸 알면서도 나는 뭐가 그리 사는 게 바빠 그리 늦게 아빠와 극장엘 갔을까.)


택시를 타고 가는 길, 아빠는 들떠 보이는 표정과 달리 기사님께 “노무혀이 영화 그거 봐서 뭐할라고 카는지, 보기 싫은데 우리 딸래미가 하도 보러 가자캐서 갑니더.”하며 은근히 딸과 영화보는 걸 자랑하듯 말을 거셨다. ‘노무혀이’ 욕도 곁들이시면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구. 아빠가 태어난 경북. 이 지역들 어딜가나 보수적인 성향의 어른들이 대부분이라 그날도 그러려니 하며 듣고 있었다. 아빠도 기사님이 같이 ‘노무혀이’욕을 하며 맞장구 쳐주길 당연히 기대하며 얘기를 꺼냈을텐데 웬걸, 이 분은 드물게 ‘이 쪽’ 성향이 아닌 경상도 분이셨다. “노무현이 왜요, 뭘 그런 말을 하고 있어요!”, 자기 편이 아닌 듯한 기사님의 말에 순간 당황한 아빠는 자존심에 지기는 싫으신 듯이 “뭐라카시노 이 양반이~! 노무혀이가 뭐 좋다꼬~!”, “뭐요?! 그런 말 할 거면 당장 내리소!”, “와 손님한테 내리라카고 난린교~!”.. 이런 거친 대화가 오고가는 동안 짧은 거리의 목적지였던 극장에 다행히 도착했다. “아빠, 영화 시작하겠다, 얼른 내리자~!”하며 급하게 택시에 내렸다. 후.. 겨우 겨우 아빠와 상영관 좌석에 앉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가 중반부 쯤 지났을 무렵 갑자기 아빠가 밖으로 나가셨다. 화장실에 가셨겠지 하고 혼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아빠가 돌아오지 않으시는 거였다. 아빠와 이 지역 어르신들이 부르는 ‘빨갱이’라 부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역시 아빠는 보기 싫은 건가. 그래서 집에 가셨나. ‘택시 안에서도, 극장 안에서도, 진짜.. 아빠는 왜 이러는거야.’ 아빠의 이런 행동들에 짜증이 나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아빠가 다시 극장 안으로 들어와 앉으셨다. “아빠, 어디 갔다왔어~“ 소곤소곤 작게 묻자 ”맥주 샀지~.“ 하는 거였다. 진짜 한 손엔 맥주 한 캔이 들려 있었고, ”재미 조은데 마시면서 봐야지~“ 하는 아빠. 그리고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아빠의 옆 얼굴을 보는데, 간만에 참 즐거워보이셨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 같이 걸으며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혀이, 인생 잘~ 살았다.“


토종 보수경상도 정치성향을 갖고 있던 아빠였지만 평소 노무현 대통령 얘기를 할 때 한번씩 이런 얘기를 한 적이 많았다.. ”사람이 너무 착하다 아이가. 착해서 탈이지. 마음이 더 모질어야 되는데.“




어제 오셨던 한 이용자분이 자기는 한강 작가가 별로라는 얘기를 건네셨다. 그럴 수 있지~ 하며 듣고 있었는데, 이유인즉 본인의 정치성향과는 맞지 않아서라는 뉘앙스셨다.


그 분이 가시고 갑자기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가 살아 계셨으면 한강 작가에 대해,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해 뭐라고 얘기할까. 왠지 아빠도 이용자분과 비슷한 말을 했을 것 같다. 더 정확히는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책을 그래 쓰면 우야노. 있지도 않은 일을 거짓말로 지어내서 쓰면 우야노.!...

근데 살면서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받는 것도 보고.. 그거는 진짜 대단한기다.”



우리 아빠, 시아버지, 또 이 지역 많은 어르신들을 보며 자란 나는 이 분들의 정치성향이 나와 다르다는 것은 존중하지만, 실제로 아닌 걸 맞다고 하고, 있었던 걸 없었다고 하거나 할 때는 할 말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어제 같은 순간엔 화가 날 때도 있고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 어르신들이 밉다는 감정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권력자들이 더 싫은 마음이 크다. 노무현이 그냥 ‘좌파’쪽이라서 싫을 뿐, 아빠가 이 분을 인간적으로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진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시아버님이 대선 때 윤석열을 옹호하며 우리에게 윤석열 찍어라고 했을 때, 2번이라 그런 것일 뿐 인간적으로 윤석열을 좋아하고 지지해서 그런 느낌은 1도 느끼지 못했다.


어제 일을 통해 그 이용자분과 괜히 나 혼자 그 분과 조금 멀어진 느낌이 들어버렸지만 그래도 그분과 나 사이엔 책이라는, 책을 좋아한다는 연결고리는 아직 남아 있다. 윤석열을 지지하든, 그 당을 지지하든 내게는 그냥 사랑하는 시아버님이시기에 오래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노무현이든 문재인이든 다 싫어해도 좋으니 그냥 아빠가 옆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지. 한번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걸 알아 평소에 일부러 아빠 생각을 안 하려 하는데 미워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사랑하는 이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묻어 있는 것이라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어버린다. 많이, 많이 보고 싶다. 하늘에서는 아빠가 늘 아프지 않고 많이 많이 웃으며 지냈으면 좋겠다.



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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