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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Jun 13. 2020

나의 여름

이 더운 계절을 사랑하는 까닭.



 바야흐로 여름이다. 며칠 전부터 장마가 시작됐다. 간밤에 쏟아지는 빗소리는 그 볼륨이 작지 않음에도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름을 좋아하는 여러 많은 이유들 중 하나, 비가 많은 계절이라는 것.



 사실 몸이 편한  봄과 가을이다. 햇볕 아래를 오래 걸어도 땀 흘리지 않아도 되고 추위나 더위를 걱정할 필요 없는, 에어컨이나 보일러에 의지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한 날씨의 계절들. 편한 것과 좋아하는 것이 다른 나. 불편함이 많은 이 여름이라는 계절을 좋아한다.      



어쩌면 여름의 분위기를, 낭만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여름밤.

벌레 소리, 풀 내음, 공기...    낮 동안 끓어오르던 거리의 아스팔트도, 빨갛게 익어가던 서로의 얼굴도, 그런 열기에 맞춰 끓어오르는 감정도 아주 조금은 사그라드는 시간, 더운 가운데 또 시원한 여름밤 만의 분위기, 공기. 그런 밤이 있는 여름이라는 계절.      




 어린 시절의 여름, 하면 복숭아 화채 생각이 난다. 친구들과 땀 뻘뻘 흘리며 고무줄을 하고 술래잡기를 하다 잠시 집에 들러 먹던, 엄마가 직접 설탕을 절여 만들어 주셨던 복숭아 화채. 수퍼마켓 통조림의 인공적 단맛이 아닌 엄마의 손맛과 여름이 생각나게 하는 시원한 단맛의 기억.


 조금 크고 나서는 여름 방학만 되면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지금은 사라진 통일호 기차에 몸을 싣고 5시간이나 달려서.

캠핑장에서 이것저것 다 대여되는 것도 모르고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있던 텐트를 낑낑 들고, 양손엔 버너와 코펠과 돗자리, 튜브를 든 채로. 햇볕에 그을려 너나없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볼들.

어리고 촌스럽고, 그때 생각하면 서로를 마구 놀려대고 싶은, 순수했던 우리들 얼굴.


 대학 MT로 떠난 계곡에서 물놀이 후 민박집 마루에 둘러 앉아 먹던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의 맛, 통기타 반주에 맞춰 다 같이 부르던 노래들.

모두 다 사랑하는 나의 여름의 기억들.   



이따금 텔레비전에서 10여 년 전에 했던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재방송 될 때 다 아는 내용임에도 얼마간 또 보고 있는 나를 본다. 은찬과 한결의 간질간질하면서 달달한 감정선도 좋았지만 이 드라마가 여름으로 가득해서, 그래서 또 좋았다.

 너무 좋아하는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을 볼 때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 첫사랑에 대한 끓어오르는 감정, 뜨거운 여름의 열기.

때로 어쩔 도리 없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은 여름과 많이 닮았다.      




 이번 여름은 역대급 더위라는 얘기를 들었다.

뽀송뽀송하게 금방 꺼내 입은 티셔츠는 이내 땀에 젖어 등 한가운데 지도를 그리고

유난히도 콧잔등에 땀이 많은 나는 몇 번이고 또 손등으로 땀을 적셔내겠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무르익고 절정에 다다르는, 조금은 과한 이 계절을 나는 또 기꺼이 버텨내고 있을 것 같다.








   

여름, 하면 생각나는 <커피프린스 1호점>



여름, 하면 생각나는 영화. <Call me by your name> (2017)
2005년 여름, 대학교  동아리 MT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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