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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Jun 30. 2022

변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 2.


변하는 게 쉬울까, 어느 정도 만족하고 내려놓는 쪽이 쉬울까. 살아보니 결코 둘 다 쉽지는 않다. 원하는 어떤 지점에 도달하진 못한 채 끝끝내 놓지는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살림이다.

아기가 있기에 매일 쓸고 닦고 설거지와 빨래를 한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하는 것 같다. 구석구석 수납장, 옷장을 정리한다던가, 조금만 방심하면 흐트러지는 주방살림 세간살이들을 정리하는 건 몇달에 한번 할까말까. 아기가 없다면 조금 더 집안일에 시간을 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에너지와 시간은 한정적이기에 지금은 하지 않으면 안될 최소한의 것만을 하고 있다. 적당히 흐린 눈을 한 채 집안일은 살짝 제쳐두고 아가와 노는 데 더 집중하기. 육아도 아주 열심인 엄마는 아니지만 집안일과 육아 둘 중에서는 육아에 더 시간을 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사실 조금 더 완벽하게 깔끔하게 하려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기를 낳은 후 생활하는 평상시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게 안되는 사람이었다. 하루에 얼마간이라도 꼭 내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집안일을 좀 덜하더라도, 이유식을 사먹이더라도 그 시간을 조금 아껴 책이라도 조금 읽고 뭐라도 좀 쓰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야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좋았다.

그런데 올해 초 쯤부터였나. 조금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어수선한 집을 확 정리해보자는 쪽으로. 쓸고 닦고 씻는 것 뿐 아니라 버릴 건 과감히 버리고 물건들의 제자리를 만들어 주는 등 집안 시스템 자체를 간결하게 만들어보는 것. 평상시에도 딱히 집정리에 많이 신경 쓸 것 없게 단순하게 바꿔보는 쪽으로. 여전히 아직 완벽한 정리는 멀었지만 그래도 올 초부터 쓸고 닦는 것 외에 일주일에 조금이라도 부엌 찬장 정리하기, 안쓰는 그릇, 옷버리기, 신발장 안 쪽 짐 정리 등 평소에 잘하지 않는 집안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짐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고 당근으로 버는 돈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반면 그만큼 책도 덜 읽고, 글도 덜 쓰고, 그밖에 하고싶은 것들은 조금 제쳐두고 있다. 그냥 한 몇 달은 이렇게 지내보자, 하는 마음인 것 같다. 이런 시간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늘 머릿속에 뭘 해야해, 이것도 하고 싶어, 저것도 하고 싶어, 생각도 계획도 많았는데 그냥 당분간은 집, 육아, 최소한의 운동, 기도, 이 정도만 하며 살아볼까 한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집, 누가 갑자기 집에 놀러와도 5분 정도만 간단히 정리하면 되는 집, 베란다 밖 너무 예쁜 풍경이 있는 우리집, 편안히 식탁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그 아름다운 풍경을 다른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집,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나의 공간, 나의 집. 당분간은 이 공간을 위해 정성을 쏟아보려한다. 집이 어지러우면 마음도 어지럽다. 어쩌면 이런 대대적인 집정리, 내 마음을 맑고 정갈하게 하고싶은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정말, 하고싶은 것들을 더 많이 하기 위해 이런 시간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변하는 게 쉬울까, 만족하고 내려놓는 쪽이 쉬울까.
변화보다 만족이 쉬울 것 같지만 사실 내겐 후자가 더 어렵다.
올해는 변화에 힘을 써보기로 한다.


2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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