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의 글쓰기
평생을 일기만 써오던 나였는데 몇년 전부터 일기말고 에세이 비슷한 글을 가끔씩 써오고 있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작은 변화라면 변화랄 게 생겨났다. 평소 남에게 감추고 싶었던 어떤 부분들을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오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자존감이 높지 않다는 것, 가끔 우울해한다는 것, 자주 외롭다는 것, 인간관계가 좁다는 것, 다이어트에 집착한다는 것, 남 의식을 많이 한다는 것, 돈 못 버는 직장에 다닌다는 것 같은 것들을. 진짜 더 하고픈 말, 더 치유하고픈 맘은 사실 더 많지만 이 정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도,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판단하면 어쩌나 걱정많은 내게는 꽤 큰 변화였다. 글쓰기는 내가 해본 경험 중 가장 나 스스로를 직면하게 하고 응시하게 하고, 또 위로하고 치유해주기까지 해 주는 것이었다. 내가 살면서 받은, 시간 꽤 지났으니 이제 괜찮지 뭐 하고 외면하고 덮어둔 상처를 아프게 바라보게 했다. 실은 괜찮지 않았던 것들, 사라지지 않고 고여있고 때론 곪아있던 상처들을. 하지만 바라봐야 나을 수 있었다. 아직 낫지 않은 것들이 많고 조금씩 스스로 치유해보려 노력 중이지만 지난 몇년 간, 그 시간들은 내게 참 귀한 시간이었다.
올해는 또 다른 변화가 작게나마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주로 내가 받은 상처들에 대해,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들에 대해 주로 쓸 때가 많았다. 올해 어쩌면 처음 제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 준 일, 남에게 폐 끼친 일에 대해 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몰래 빵을 훔쳐 먹은 일, 단체의 규율을 중요시하기보다 내가 하고픈 대로 하느라 다른 사람의 시간을 뺏고 민폐를 끼친 일같은 것들을. 실은 아마 더 많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받은 상처만큼 알게 모르게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만큼 못난 인간이었다는 걸 들키는 게 싫어 쓰지 않았던 것도 있겠지만 그 동안은 내 상처가 눈앞을 가려 내가 남에게 준 상처는 기억을 못하고 살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내게 글은, 마음을 정리하고 치유하고 정화시켜주는 어떤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엔 현재에 대한 글을, 미래를 위한 글을, 또 나 자신에 국한된 얘기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 대한, 다른 이들을 위한,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이 쓰고싶다. 지금은 나를, 그 중에서도 내 과거의 사건들, 남아있는 감정들, 찌꺼끼들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마음이라는 바다에 뜰채를 던질 때 여전히 둥둥 떠다니는 어떤 것들. 그 어떤 것들 중 최근에 들여다보게 된 것이 남을 아프게 했던 것들이었다. 한발짝 나아가고 싶었을까, 돌아보고 싶었을까, 그래서 달라지고 싶었을까. 더 정답에 가까운 말은, 그냥 그 일, 그 감정들도 다 내 삶이었기 때문에. 내 안에 그 어떤 것이든 자꾸 생각나는 것, 떠오르는 것, 그리하여 쓰고 싶은 것들을 그저 쓰려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나를 치유하게 하고 내 맘을 조금이라도 맑아지게 하는 것들, 내가 쓰고 싶은 어떤 것이든 써보려한다. 부끄러운 것들, 수치스러운 것들도, 필요하다면.
결국 용기일 것 같다. 좋은 에세이를 쓰는 데 필요한 것 중 어쩌면 가장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내게 결국엔 좋은 것만 주는 글쓰기.. 잘 쓰는 글,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많지만 그냥 스스로에게 솔직한 글을 써나가고 싶다. 그게 '글쓰기'라는 고마운 존재에 대한 나의 작은 보답이라 여긴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글을 더 진솔하게 쓸 용기는 내 삶을 더 아끼고 사랑할 용기와 같은 말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