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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정 Jan 14. 2016

하려고 한게 아니라 창업밖에 할 수 있는게 없다

2013년 1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해외 가족여행을 갔다. 부모님과 와이프, 배속에 있는 둘째, 그리고 아들과 함께 간 첫 여행이었다. 문제는 여행 마지막날 아버지가 뭔가 이상했고, 사실 이런 이상사태가 며칠전부터 그랬었다는 어머니의 말이었다. 


티니안에서 사이판으로 넘어와 공항에서 계속 검색을 했다. 나는 그때 아버지의 상황이 뇌경색이 진행중이라고 생각했다. 뇌혈관이 막혀가고 있는것 같았다. 사이판에는 그런 수술을 할 병원이 없다는 것도 알았고, 항공사에는 말하지 않은 상태로 어서 한국에 도착하기만을 바랬다. 남한테 피해주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었지만 비행기가 일본땅을 지나가고 있을때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3시간안에 병원을 가면 된다고 하니까 혹시라도 지금 정신을 잃으신다면 부산에라도 착륙하면 되겠다고 말이다. 사람이 그런 상황이 되니까 다른 승객들에게 미안한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비행기에서 내내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왜 내가 가자고 한 여행에서 이런일이 생겼을까? 언제나 신실하진 않았지만 항상 내가 내마음대로 가려고 할때마다 치시는 하나님이셨기에 바로 깨달았다. 


'OO은행 안가겠습니다. 제가 교만했습니다. 하나님 일을 하겠습니다. 도와주세요 하나님'


그랬다. 입사가 확정되고 엄청 거만해졌던것 같다. 책을 쓸까에 대한 고민부터 여러가지 이 사회가 날 알아준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하나님이 그걸 치시는것 같았다. 그래서 안가겠다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다. 하남의 일이 뭘지 어떻게 될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기도했다.  지금보면 매우 수준낮은 기도다. 이렇게 할테니 저렇게 해주세요. 라는 식의 기도라니...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고대구로병원 응급실에 갔다. 아버지는 그때도 장로의 책임감(?) 때문이었는지 내일(도착한 날이 토요일이었다) 주일예배 대표기도라며 집에갔다가 내일 교회에 갔다 병원에 다시 오겠다며 이야기하고 계셨다. 여러검사를 하고 CT를찍었는데 드라마에서 처럼 우루루 의사들이 달려오더라. 의사의 첫마디는, 


"이미 출혈이 상당합니다"


어머니가 참 대단한게 의연하시더라. 난 사실 엄청 충격이었다. 혈관이 막혀가고 있는 상황인줄 알았는데 뇌경색이 아니라 뇌출혈이었고, 그것도 오래되었다니... 그렇게 급하게 은평구에 있는 참사랑병원으로 트랜스퍼 되었고 거기서 바로 수술을 하셨다. 아버지랑 어머니는 엠블란스에 가고 나는 내차를 타고 구로에서 은평으로 운전해서 가는데 계속 눈물이 나더라. 


다행히도 수술은 잘 끝났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병원에 왔기 때문에 예후도 좋을거라고 하더라. 하나님이 살리셨다. 은혜다. 라는 식의 결과론적인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그때 돌아가셨다면? 그래도 그런 말이 나오는게 믿음이겠지만... 나는 이런 경우에 항상 고민하는것이 두가지인데, 첫번째는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그리고 두번째는 이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잊어버리지 않을까... 이다. 


이것을 간증으로 하라면 할말은 너무도 많다. 그때 가족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돌아가셨을거다. 그나마 며칠동안 같이 지내다보니 이상한것도 발견하게 되었고, 또 병원에서도 그랬지만 누가봐도 의식이 있는게 비정상이라고 하더라. 모든게 딱 마지노선에 걸쳐서 하루만 더 있어도 위험한 상황이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그리고 OO은행에 입사를 포기한다. 그때 담당자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나의 교만의 상징이었던 OO은행은 가지 않겠다고 말을 했다. 2013년엔 그렇게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퇴원하시고 난 뒤엔 둘째를 임신중인 와이프가 조기진통이 와서 입원을 하게되고, 와이프가 퇴원하니 내가 허리디스크 수술로 입원을 했다. 오랫동안 쉬다가 어떤 회사에 마케팅 팀장으로 들어갔는데 하루만에 나왔다. 둘째가 태어나서 와이프는 조리원에 있을때 였는데 첫날 출근하고 집에와보니 아버지가 손자 밥먹인다며 숟가락을 드시는데 손을 떨고 계시더라... 아예 후유증이 없는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아직은 내가 회사에 다니는것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직으로 있다가 알바 비슷하게 일을 받아서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창업을 하게되었다. 창업을 하려고 한게 아니라 허리가 아파서 의자에도 못앉고 집안 사정도 내가 애들도 봐야하고 그러다보니 회사에 취업은 못하는 상황이었고... 얼레벌레 남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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