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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는 Dec 30. 2022

시간의 흐름에 나를 띄우고

한 해 갈무리


해가 바뀔수록 느끼는 건 세상엔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절대 이뤄지지 않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멋모르던 학생 시절 대학은 SKY가 다인 줄 아는 것처럼, 노력하면 못 이룰 거 없다는 자신감과, 그 일을 위해선 목숨도 버릴 수 있다는 치기 어린 자존심이 불확실한 미래에 맞서 싸울 힘을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아버렸다.


노력보다 더 중요한 건 운이고, 세상과 타인을 바꾸는 것보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게 더 쉽다는 것을.

그렇기에 불리한 조건에서도 내가 가진 전부를 소진해야 하며, 타인의 무례와 불친절에 내 전부가 흔들려선 안 된다는 것을.

하루하루 나에게 불리한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돌아 돌아 나에게 찾아 올 행운을 인내로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타인의 무지와 무례에 일일이 반응하지 말고, 타인의 소소한 행동에도 감사함을 느끼고 나 또한 남에게 친절을 베풀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내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에 화를 내고, 울고, 속상한 마음을 계속 품는 것은 더 불운과 고통을 가져온다.

감정의 흐름에도 의도적인 차단이 필요하며, 때로는 모른 척하거나 무던한 척 지나가기도 해야 한다.


어쩌면 이런 현실을 이제라도 알아챈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언제든 손을 흔들며 찾아오는 불운을 맞닥뜨릴 때마다 나를 돌보는 방법들을 계발한다.


감정의 차단이 힘들 때는 진통제를 먹는다. 그러면 신경이 둔해지며 삐죽한 마음도 조금 둥글어진다.

때로는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비생산적인 일에 힘을 쏟는다. 음악을 크게 틀고, 남에게 보일 가치가 없는 그림을 그리거나, 몰라도 전혀 불이익이 없을 잡지식들을 탐식한다.

진정이 되지 않으면 심장이 뛸 정도의 종종걸음으로 산책을 한다.

평소 내버려 뒀던 서랍을 비워 다른 배치로 정리하고, 창틀의 먼지를 구석구석 닦고, 온라인 클라우드의 파일을 정리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알고 지나가는 고통에 둔해질 줄 알면

예고되는 불운 앞에서도 눈감고 외줄 타기를 멋지게 해내는 광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의 흐름에 나를 띄운다.

멍하니 물의 표면을 유영하다 보면

언제고 다시 물장구를 치며 물을 거슬러 오를 힘을 얻을 것이다.



22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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