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입성기
22년 6월 생일날 동생이 카카오페이로 20만 원을 송금해줬다. 코로나로 돈벌이가 어렵다는 핑계로 두 해를 연달아 동생의 생일을 챙기지 않았기에 갑작스럽게 받은 선물에 놀랐다. 거기다 나와 동생은 떨어져 살며 서로의 생사 여부만 확인하는 사이다. 동생이 어떤 마음으로 누나에게 20만 원이나 되는 용돈을 부쳐줬는지 그 속은 알 수 없지만 셈에도 없던 공돈이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마침 그즈음 같이 여행을 다녔던 지인이 브런치 작가가 됐다. 글과 영상을 넘나들며 창작 활동에 힘 쏟는 지인의 열정에 감화돼 나도 브런치 작가란 꿈을 키우고 있던 차였다.
나는 동생이 준 20만 원을 투자해 카페에 다니며 브런치 작가 심사에 낼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J.K. 롤링이 어느 카페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해리포터를 썼던 것처럼 한 카페를 정해 출근 전, 퇴근 후 틈틈이 카페에 가서 글을 쓰는 로망을 실현하기로 했다. 그동안 코로나로 벌이가 시원찮아 그 좋아하던 카페도 즐겨가지 못하던 내가 커피값 걱정 없이 카페에 다닐 수 있다니! 마음속으로 동생에게 무한한 감사 인사를 보냈다. 누나가 브런치 작가가 돼서 책을 내면 꼭 너에게 이 영광을 돌릴게! 하며 말이다.
그 후 카페에 가서 예전에 썼던 글과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골라내서 작가 심사에 보낼 글들을 다듬었다. 감사하게도 지인이 심사에 통과한 자기소개서와 제출했던 글들을 다 보여줬기에 참고해서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브런치 작가 심사는 여러 번 낙방한단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20만 원을 다 쓸 때까지 브런치에 도전해야지 싶었다. 지인도 심사에 통과하기 위해 글의 방향성을 잘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알려줬다.
내 몸 안에 글을 쓸 열정이란 연료는 찼지만, 브런치 작가가 되려면 어떤 장작을 넣어 글을 써야 할까 고민이 됐다. 예전에 썼던 글들은 그냥 내 감정에 취해 쏟아냈던 글들이었다. 그 글들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사람들 앞에 내놓기엔 세상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브런치엔 작가 등단과 출판을 목표로 하는 진지한 작가님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내 직업이 남들에게 내세울 정도로 전문적인 것도 아니고, 내 인생 경험이 특별하게 다채로운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내가 과거에 썼던 글들은 지금 읽어도 우울하고 어두운 감성의 글이 다여서 독자들이 이런 글들을 읽고 싶을까 의문이 들었다.
글의 방향성과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라는 사람을 바로 보려니 열등감과 자기 방어적인 자기애로 어그러진 한 인간이 보이는 듯해 머쓱했다.
그러다 16년에 쓴 글과 22년 초에 쓴 글을 읽게 되었다. 6년이란 시간. 20대에서 30대가 됐고, 서울에서 산 만큼의 시간을 다시 제주에서 살았다. 그동안 내 글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던 16년 글과 달리, 22년의 나는 그럼에도 고통을 그러안고 세상과 화해하며 변화해 나가자라고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
나는 변한 걸까? 무엇이 날 변하게 만들었을까? 물론 변화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삐져나오는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이길 때면 주변과 선을 긋고 땅굴을 파고 들어가기도 했다. 그로 인해 크게 다투기도 했고,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마음을 다쳐 온 힘을 다해 나를 다독여야 하는 시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를 이루는 근본적인 마음의 성질이 변했다는 것이 분명했다.
모난 돌이었던 내가 어느새 둥근 돌이 돼 있었다. 좋고 싫은 것이 명확해 싫은 건 기를 쓰고 안 하려고 해 주변에 불화를 일으키던 내가 어느샌가 카멜레온처럼 주변에 나를 맞출 줄도 알았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제주에 와서 너무 힘들다고 울분에 차 있어, 스스로의 변화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나를 돌보지 못한 시간들을 흘러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힘든 시간들을 버티며 나는 세상에 갈려 모난 부분이 둥글어졌다.
결과적으로 ‘나’라는 사람의 크기는 작아졌지만 단단한 내가 되었다. 나는 변화한 내가 기특하면서도 애잔하고 짠해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특히 마음이 힘들어 혐오를 쏟아냈던 20대의 나에게 세상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거였다. 어차피 ‘잘 읽힐’, ‘그럴싸한’ 글을 쓰지 못할 거라면, 이왕 나의 공간을 마련하려는 만큼, 내 마음이 이끄는 글을 써보자 싶었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화해하고, 가족과 화해하고,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글의 방향성을 정하고 나선 착착 심사에 내보낼 글을 고르고 다듬었다. 떨리는 마음을 담아 브런치 서랍에 글을 등록했다. 몇 번이나 떨어질까? 동생의 지원금을 소진하고도 작가가 되지 못하면 어쩌지?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려나?
이런 나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5번의 카페행 뒤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22년 6월 29일이었다.
(2)에서 계속.
+) 브런치 작가 소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