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브런치북 공모전 도전기
막연히 작가들의 공간이란 브런치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었던 나는 정작 브런치 작가가 된 뒤에야 브런치의 세계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초반에는 브런치 작가가 됐다는 설렘을 갖고 글을 발행했다. 구독자가 늘기 위해선 꼬박꼬박 글을 발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도 들었다.
그러다 조회수 1000이 넘었다는 알람을 받았을 때는 정말 공중으로 팔짝 뛰었다. 반신반의하며 올렸던 내 글이 읽힌다는 사실이 기뻤다. 알고 보니 브런치에서는 초보 작가들에게 메인에 노출될 기회를 준단다. 어쨌든 고맙고 기쁜 일이었다.
메인에 걸린 내 글을 보면서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설렜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조회수 7천에도 댓글은 딱 하나만 올라왔다. 악플도 관심이라더니. 내 기대와 달리 브런치는 상호 발전보단 친목으로 보이는 댓글이 주였고, 라이킷과 구독도 셀프 홍보와 품앗이의 문화로 돌아가고 있었다.
글을 써도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쓰는 게 맞는 걸까? 조회수와 라이킷 숫자에 홀리는 게 정상인가? 이게 메인에 오를 만한 글일까? 나는 사람들이 읽을만한 글을 쓰는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브런치 속 숫자들에 실망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대신 오프에서 합평 수업을 다닌다는 지인이 이해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브런치북을 알게 되었다. 발행한 글들을 하나로 모아 책을 만들면 추후 회별 완독률과 독자를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브런치북을 알고 보니 작가님들마다 제 색깔로 브런치북을 완성하고 있었다. 특정 작가님의 개성과 가치관을 이해하기에도 브런치북이 제일 효과적이었다.
물론 책 한 권을 엮어 글쓰기부터 편집까지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나같이 취미 글쟁이에겐 더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허공에다 불평만 떠들 바엔, 피드백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브런치북을 활용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마침 제10회 브런치북 공모전이 있었다. 공모전을 위해서라도 시험 삼아 브런치북을 한 권 완성해야 했다. 그러면 브런치의 글쓰기 시스템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경험치를 두 배로 쌓을 수 있었다.
브런치북을 목표로 삼고 나니 화해하는 글쓰기를 목표로 책의 소재를 뭘로 잡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마침 초심자의 행운으로 메인에 올랐던 글이 ‘가족 밥상’에 관한 글이었고, 그 글을 쓰면서 이미 큰 개요를 짜놨던 터라 이 주제를 이어서 브런치북을 완성하자 싶었다. 그렇게 “가족밥상에 얽힌 권력”을 주제로 내가 평소에 가부장제와 페미니즘, 종교, 환경, 채식 등에 가진 생각들을 풀어내보자 다짐했다.
결과를 돌아봤을 때 브런치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22년 7월, 휴가를 맞아 3년 만에 올라간 서울에서 결국(!) 코로나에 걸렸고 그 후유증이 한 달 넘게 이어졌다. 건강 회복과 미뤄둔 회사일에 힘 쏟는 동안, 몇 번이고 쓰이지 못한 브런치북이 내 발목을 붙잡곤 했다. 나는 능력 부족과 체력 부족을 이유로 애써 브런치북을 외면했다. 그러다 공모전 마감을 하루 앞두고서야 브런치북을 겨우 제출했다. 그때의 소회를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쩌다 남들 하는 마라톤에 참여했는데, 갤러리들이 박수쳐주니 어버버 달리다가, 옷은 다 찢어지고 다리를 질질 끌며 완주한 느낌이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기분. 하반기의 큰 목표가 사라져 허탈함이 큰 데다 브런치에 소홀해서 시간이 지체된 만큼 내가 낸 브런치북의 완성도도 떨어졌다. 스스로도 주제에 관해 더 많은 ‘할 말들’이 있었는데 시간 부족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미완성의 책을 냈다는 부끄러움이 컸다. 그럼에도 공모전에 제출한 데는 완벽주의보다는 서투른 시도가 문을 두드리고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해가 바뀌어 당선이 되지 않은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첫 브런치북은 떨어지길 잘했다. 탈락한 덕에 내 스스로도 만족스러울 정도의 글로 다시 고쳐 쓸 기회를 얻었다. 브런치북 리포트를 통해 회별 완독률을 확인할 수 있고, 이를 참고해 글쓰기의 전략을 수정할 수 있다. 앞으로 내가 더 많은 경험치를 얻는다면, 22년의 너덜너덜한 책에서 진화해 세상에 나가 오롯이 한 권의 책의 가치를 해낼 것이다.
그래서 23년 목표에는 새로운 브런치북 쓰기와 동시에 첫 브런치북 수정하기가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너덜너덜한 글을 쓴다. 누더기 같은 퀼트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 언젠가는 다채로운 색의 세상을 담는 보자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때까지는 이 색 저 색의 모든 글쓰기에 도전해봐야 할 터이다.
(3)에서 계속
+) 첫 브런치북 (22년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