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9. 트리어에서 칼 마르크스를
독일 서남부의 소도시 트리어.
3층짜리 주택이 늘어선 조용한 거리 끝에 칼 마르크스 생가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문록에는 한자 이름이 유독 많았다. 중국인 방문객이 많다는 뜻이었다.
전시관 곳곳의 스크린에서는 그의 어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다가온 문장.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기독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혁
명가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크린에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잇달아 떠올랐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
“인간은 자기 운명을 지배하는 자유로운 존재다.”
“화폐는 인간의 노동과 생존의 양도된 본질이다. 이 본질은 인간을 지배하며 인간을 숭배하게 만든다.”
“인간이 종교를 만든 것이지, 종교가 인간을 만든 것은 아니다.”
나는 여러 개의 화면에 비친 그의 문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돌아가서 한글로 옮겨가며 다시 찬찬히 읽고 싶었다.
칼 마르크스(1818~1883)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본(Bonn) 대학에서 법률을, 베를린에서는 철학을 공부했다. 헤겔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는 계급 간의 불균형에 깊이 천착했고, 결국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며 체제 전복자로 낙인찍혔다. 추방된 그는 파리와 런던을 거치며 사상을 발전시켰고,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그의 이론을 집대성했다.
유산도, 자식들도 잃고, 빈곤과 유랑의 삶을 살았던 마르크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인류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남겼다.
그는 지주와 노동자의 계급 모순을 비판하며 계급 없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 이상은 훗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국가들의 이념적 기초가 되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온몸을 던진 한 사상가. 나는 그의 기념관에 서서, 이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영혼에서 뿜어 나오는 향기를 한동안 깊이 들이마셨다.
한때 나도 LA 한인타운의 ‘한빛모임’에서 마르크스를 공부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작은 개인 사무실에서 시작되었지만, [라디오 코리아]강의실로 옮겨 성장했고, 마지막에는 김 선생님의 자택에서 마무리되었다. 철학이 늘 어렵게만 느껴졌던 내게, 마르크스의 사상은 유독 선명하게 다가왔다.
한국 사회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기득권의 세습과 노동자의 착취—마르크스는 그것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제엔장헐 놈의 시상. 다 똑같은 사람으로 났는디, 쎄 빠지게 일허는 놈은 죽어라 일만 허고, 할랑할랑 부채 들고 대청마루에 책상다리 앉었는 양반은 가만히 앉은자리에 서 눈만 멧 번 깜짝이먼 몇 천 석이니….”
- 최명희 『혼불 1편 112 쪽』 중에서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봉건주의의 지배를 받았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민초들은 끊임없는 억압 속에 살아야 했다. 그런 사회를 바꾸려 했던 마르크스의 삶은 고통이었지만, 그 고통은 시대를 앞선 모험의 결과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40여 년. 그의 사상은 소련에 의해 계승되었고,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와 대립했다. 한때는 많은 지식인들이 그 사상에 매료되어 당원이 되었지만, 결국 소련의 붕괴로 마르크스주의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르크스가 제기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의 결함을 보완해 나가고 있으며, 독일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며 복지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 역시 진보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그의 정신을 되새기려는 움직임이 있다.
마르크스여! 당신의 이름 앞에서, 열정을 다해 함께 공부했던 ‘한빛모임’의 김윤경선생님과 회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에필로그 – 인간 정신을 찾아서
「독일 인문학 기행」을 이끈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문학은 인간학”이라 했다.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깊은 길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번 여행은 인간 정신을 탐구하는 여정이었다.
우리는 열흘 동안 독일의 19개 도시를 걸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철학의 뿌리를 내렸다면, 독일은 그 줄기를 세우고 열매를 맺은 땅이었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독일에는 괴테가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그의 유년시절을, 바이마르에서는 실러와 함께 꽃 피운 문화예술의 흔적을 만났다. 괴테는 정치
에도 참여하며 바이마르를 문화의 중심지로 빛냈다.
독일의 흙과 햇살, 강과 바람, 공기와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문학과 예술, 철학과 정치가 스며든 삶의 무늬를 보았다. 향긋한 백포도주와 진한 흑포도주를 마시며,
독일이라는 얼굴을 깊이 들이켰다.
특별한 시간도 있었다. 재독 한인 작가들과의 만남. 과거 광부와 간호원으로 독일에 파견되었던 그들은, 디아스포라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문학을 통해 우리는 한국 문학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보았다.
이 기행은 찬란한 독일인의 업적뿐 아니라, 깊은 상처와 반성까지 껴안은 독일 정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전쟁의 기억을 기록하고 반성하는 독일의 태도는, 기억을 외면하는 일본과 극명하게 대조되며 ‘기억’의 가치와 책임을 되새기게 했다.
이번 여행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독일 정신의 샘을 더 깊이 길어 올리는 첫걸음으로 삼고, 그들의 사유와 예술, 실천의 유산을 앞으로도 성실히 탐구해 갈 것이다.
[독일 인문학 기행]은 임헌영 교수의 안내로 한국산문 회원들과 함께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홀로 참가해 고된 순간도 있었지만, 한국산문 고문인 김미원 작가가 룸메이트로서 따뜻이 살펴주어 수천 리 장성 같은 인연을 쌓았다.
글벗으로 맺어진 이 소중한 인연, 인문학 여정의 또 다른 결실이다.
글쓴이 소개
필명: 국화 리
숙명여고와 서울교육대학 졸업.
1982년 미주 로스앤젤레스로 이민
한의사로 활동(산타모니카) 한의학 박사
2006년 미주『문학세계』로 등단
2010년 서울 『한국산문』으로 재등단
2025년 수필집 『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출간
미주문인협회원,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
현재 로스앤젤레스 피오피코 도서관 후원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