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에서 금강산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운전사가 명단 확인을 마친 뒤, 버스는 도심을 빠져나가 고성의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이번 여행은 조국을 배우기 위해 서울에서 1년간 할머니와 살고 있는 큰딸과 함께였다.
딸이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내 고향인 이북 땅을 밟게 해 주고 싶었다.
버스는 홍천과 인제를 지나 5월의 싱그러움 속을 달려갔다. 네 시간 후, 첫 집결지인 고성의 금강산 콘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북한 여행안내를 받고, 사전에 신청해 두었던 북한 관광증과 출입국 신고서를 받았다. 북한에서는 달러화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여행자 1인당 전자카드를 나누어 주었다. 우리도 그 카드에 북한에서 쓸 금액을 충전했다.
오후 세 시경, 버스는 고성 통일전망대의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했다. 반대편 주차장에는 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밟고 있었다. 그들이 완전히 빠져나간 뒤,
우리 500여 명이 남한 측 출입국 사무소에서 출국 검사를 마쳤다.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는 돌아가고, 우리는 금강산 관광을 마친 사람들이 타고 왔던 현대 버스 10여 대에 나누어 타게 되었다. 미국 교포 10여 명도 같은 버스에 배정되었다. 매일 천여 명이 이곳을 통과하며, 금강산에서 돌아오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의미 있게 스쳐 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왔을까.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1. 해금강 호텔에 머물다
버스는 좁고 비포장된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렸다. 남한 측 초소에는 철조망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무장한 헌병대가 서 있었다. 우리가 흔드는 손짓에 그들은 미소로 화답했다.
곧 군사분계선, 이른바 삼팔선을 넘었다.
천만 이산가족의 한이 서린 이곳은 잡초만 무성했다. 버스 안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그곳을 바라봤다.
내 할머니는 북에 두고 온 아들을 그리다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이 된다. 어머니는 신랑을 기다리다 비쩍 마른 고목이 되었다.
남북통일은 남은 우리들의 몫이지만, 그 통일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육로로 휴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다는 뉴스에 서둘러 나선 길이었다. 수년 전, 중국을 거쳐 백두산 천지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 건너편이 북녘 땅이 아닌가.
그때 혼신을 다해 아버지를 불렀지만, 외침은 허공에 흩어졌다.
휘청이는 걸음으로 돌아서야 했던 그날이 다시 떠올랐다.
북한 초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무장한 북한군 10여 명이 보였다. 우리의 손짓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전투태세를 유지한 채 긴장감만 감돌았다. 구세대 복장의 왜소하고 깡마른 모습이었다.
남북한 군인을 나란히 세워 놓으면, 누가 같은 피를 나눈 동포라 하겠는가.
50여 년의 분단은 사람들의 모습까지 바꾸어 놓았다.
빈 들판에서는 10대쯤 되어 보이는 인민군들이 철도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 자재는 모두 현대건설에서 제공한 것이라 한다. 버스가 지나갈 때면 모두 돌아앉아 쳐다보지도 않았다. 군데군데 서 있는 보초병도, 밭일하는 아낙들도 무표정했다. 아마 상부의 지시일 것이다. 잡초만 자라는 들판에는 드문드문 낡은 기와집이 보였다. 크기와 모양이 비슷했고, 빈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끔 걸어가는 주민이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40~50년 전 우리 농촌 마을을 보는 듯한 정겨움과 측은함이 겹쳐왔다.
멀리 둥근 바윗덩어리들이 서로 껴안고 누운 듯한 바위산이 보였다. 남한과 인접한 곳이라 나무는 모두 베어져 민둥산이었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의 신비한 자태는 어디쯤에서 볼 수 있을까.
동해 바닷가가 반원 모양으로 들어와 호수처럼 보이는 곳이 장전항이다. 그곳 바닷가에 홀로 서 있는 고층 건물이 우리의 숙소인 ‘해금강 호텔’이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출출해진 우리는 대기 중인 버스를 타고 온정각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 식사는 무공해 건강식이었으나, 진수성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먹는 재미가 덜했다.
식사 후에는 수백 명이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는 현대식 금강산 온천장에 갔다. 흐린 밤하늘 아래 별은 없었지만,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일본의 온천장도 부럽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창밖을 보니 금방이라도 부슬비가 내릴 듯했다. 남부 지방에 내린 비가 북상 중이라는 일기예보를 들었기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떠나온 길이었다.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비와 우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날씨 탓인지 음식이 입에 잘 당기지 않았다.
2. 금강산이 부른다
금강산은 서해 쪽으로는 ‘내금강’, 동해 쪽으로는 ‘외금강’이라 부르는 거대한 산이다.
십여 대의 버스가 행렬을 이루며 금강산으로 향했다. 포장이 되지 않은 좁은 산길을 따라가니, 이곳 외금강의 구룡연 코스를 오른다고 한다.
이 코스에서는 삼록수, 양지대, 옥류동, 금강문, 연주담, 비봉폭포, 구룡폭포와 구룡연, 그리고 상팔담 등 절경을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어느 지점에서 버스가 멈추고, 우리는 물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계곡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산의 무공해 공기가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
계곡의 바위는 절묘한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 위로 떨어지는 물은 산천을 뒤흔드는 듯한 울림을 냈다. 산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바위 사이를 굽이굽이 돌아 흐르며 장관을 이루었다. 그 경치에 홀려 정신없이 계곡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하늘을 덮었던 검은 구름이 걷히고 가벼운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미국에서 온 우리 모녀의 가슴속에 금강산의 경치를 담아 고향의 추억으로 남겨주려는 듯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산길을 오르며 구름다리를 건너고, 가파른 계단을 숨을 몰아쉬며 올랐다.
뾰족한 산봉우리 사이에 서 있는 소나무는 한 폭의 산수화 같았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길이 가팔라질수록 숨이 차고 땀이 흐르며 서서히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허리를 펴고 심호흡을 하며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 멀리 보이는 수많은 봉우리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서로를 끌어안듯 하늘과 정을 나누고 있었다.
바위에 부딪혀 흘러내리는 물은 비취색을 띠며 모였다가, 긴 계곡을 따라 춤추듯 방향을 바꾸며 내려갔다.
‘마시면 십 년은 젊어진다.’는 금강산의 맑은 물을 마시자, 가슴이 열리며 하늘과 소통하는 듯했다.
산세가 더욱 가팔라지자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그곳이 바로 금강문이라 불리는 좁은 바위틈이다. 이어 옥처럼 맑고 푸른 물이 흐르는 옥류동의 구름다리를 건넜다. 잠시 멈춰 서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에 젖어들었다.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했고, 계곡은 잘 다듬어진 대반석 사이로 옥수를 흘려보냈다.
1920년, 육당 최남선은 ‘금강 예찬’에서 이 옥류동을 이렇게 묘사했다.
“기묘, 웅장, 밝음, 화려, 그윽함, 현묘함, 원만함, 빼어남, 소리, 색채, 정신, 기운 등 모든 미적 요소가 완벽하게 조화된 상태를 상상해 보라.”
연주담에 담긴 농익은 연초록 물빛에 가슴이 새색시처럼 설레었다. 바위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비봉폭포를 마주하자, 가슴이 터질 듯 벅찼다.
전망대에 서니 귀가 먹먹해질 만큼 웅장한 폭포 소리가 울렸다. 바로 구룡폭포다.
전설에 따르면 아홉 마리의 용이 내려와 놀았다는 곳이다. 폭포수에 흠뻑 젖으며 구룡연에 서니,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모두들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이윽고 급경사의 상팔담에 도전했다. 눈이 아직 녹지 않은 길을 미끄러지면서도 숨을 헐떡이며 올라갔다. 땀에 젖은 나를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이 요란한 박수로 맞아주는 듯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금강산인가. 이곳은 분단의 상처를 파고들며 조용히 어루만져 주었다.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 그리운 일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
오랜 세월 가슴속에만 부르던 ‘그리운 금강산’을 산 위에서 마음껏 부를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었지만 산신령과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딸이 손을 잡아 이끌어 내려가야 했다. 마치 그리운 임을 만나고 돌아가는 여인처럼, 발걸음이 춤을 추고 있었다.
산을 오르내리며 기암절벽 곳곳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문구와 ‘김일성 수령’ ‘김정일’ 등의 이름을 자주 보았다. 어떤 절벽에는 ‘김일성 수령’이라는 글씨가 깊이 2m나 파여 있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연을 훼손한 그들의 무례함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훗날 우리 자손들에게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국 역시 비슷하니, 그저 공산주의 체제의 잔재라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