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애정과 껄끄럼 사이, 일본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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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과 껄끄럼 사이, 일본

-여행과 사색의 기록-


제3부


관서 기선을 타고 뱁부로


11시간이 걸리는 먼 뱃길에 올랐다.


선실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갑판으로 나갔다. 불빛이 찬란한 다리가 깜깜한 공간 속에서 둥근 곡선을 보여주며 있었다.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저마다의 승객들이 이 아름다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동안 갑판에서 떨다가 나는 4개의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일행인 여자들과 침대에 누워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우리가 단잠에 빠져 있는 동안 배는 쉬지 않고 남쪽을 향해 항해를 계속했다. 다음 , 밝은 햇살을 받으며 안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쳤다. 드디어 일본 남쪽 지방, 규슈에 도착했다.


태양과 자연의 나라, 뱁부


규슈에는 6개의 국립공원과 7개의 국정공원이 있다 한다. 우리는 오오이타현 뱁부 시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다녀왔던 도시와 달리, 평화롭기만 전원도시가 펼쳐졌다. 쯔루미 다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뱁부의 전경을 내려다보니, 나지막한 산자락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유황 온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였다. 내게는 불타는 산간도시처럼 인상 깊게 남았다.


뱁부는 온천이 3,800 개나 되는 온천 천국으로, 신혼여행지로도 유명한 휴양지다. 우리가 찾은 곳은 지옥 온천이었다. 지하 200~300미터에서 분출되는 증기와 열기가 무섭게 솟아올랐다. 푸른색, 황토색을 띠는 온천탕은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어 유황가루 생산 공장을 견학했다. 온천수가 부족한 곳에서는 가루를 물에 풀어 사용한다 한다.


나는 본고장에서 진짜 유황가루를 사 들고 나오며 기대에 부풀었다.


조금 올라가면 직경이 30~40센티미터나 되는 연꽃이 있는 연못과 통나무처럼 굵은 대나무 숲이 있었다. 다시 이동해 2천여 마리의 원숭이가 자생하는 자연 원숭이 공원에 올랐다. 원숭이 사회에는 조직이 있는데, 이날은 5백여 마리 그룹이 내려와 여유롭게 놀고 있었다. 우두머리 원숭이에게는 마리의 첩이 있어 서로 질투하며 싸우기도 하고, 조직끼리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조련사의 설명을 듣자,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 떠올랐다.



스기노이 팔레스호텔에서의 휴식


하루를 보내고 숙소인 스기노이 팔레스호텔에 도착했다. 유카타를 입은 관광객들로 넓은 실내는 붐볐고, 객실에는 넓은 더블 베드룸과 다다미방이 준비되어 있어 귀빈 대접을 받는 듯했다. 나는 유카타로 갈아입고 저녁식사장으로 내려갔다. 일본식 뷔페는 메뉴가 다양했으며, 대부분 한국인과 중국인이었고 서양인은 드물었다. 호텔 온천장 시설도 훌륭했다.

관광 후 피로를 풀기 위해 밤에는 싸늘한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별들 사이로 어머니와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여행을 취소할 뻔했지만, 손녀딸의 정성 덕분에 상태가 좋아져 일본 여행을 즐길 있게 되었다.


방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니 처음 입어본 일본 의상도 제법 어울렸다. 소식을 하던 몸이 일본 여인들을 닮아 가고 있는 느껴졌다. 다다미방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일본과 조선, 그리고 ‘화’(和)의 정신



일본은 섬나라라 서로 싸우면 바다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자각이 있었다. 그래서 ‘和’(조화, 평화)를 이루며 살아야 했다.


7세기 쇼토쿠 태자는 이를 법으로 지키게 했고, 이후 일본의 사고방식과 국민 윤리로 자리 잡았다. 국민들은 자기 분수를 알고, 남에게 폐가 되지 않으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명치유신 이후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고, 상업과 경제가 발달하면서 사무라이 계급제도가 무너지고 국민들의 전문성이 높아졌다. 반면 조선은 성리학의 당파싸움과 부패로 민심이 흉흉했고, 결국 외세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내란과 세력 다툼이 있었지만 외침을 받지 않아 안정적으로 발전할 있었다.


일본은 경제는 1990년부터 흔들리고 있으나, 정보통신과 신세대의 변화 속에서 다시 대개혁을 맞이하고 있긴 하다.

정상에 오르면 내리막 길뿐이라는 주역의 가르침처럼, 교만하지 않고 때를 준비해야 함을 깨닫는다.


예쁜 유후인 마을


유후인, 안개로 유명한 마을에서 나는 여유롭게 거리를 거닐며 쇼핑을 즐겼다. 마을의 작은 상점들은 마치 유럽의 소도시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행복의 언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후쿠오카현은 자연환경이 아름답다. 가는 도시마다 따뜻한 동네처럼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오후에는 다자이후시에 있는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滿宮) 방문했다. 거대한 신사는 학문의 ,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시고 있다. 그는 901 우대신(우의정) 직위에서 갑작스레 다자이후 관리로 좌천된 , 불과 2 만에 세상을 떠났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입학 전 아이들이 이곳을 찾아 학문에 입문하는 의식을 치른다. 나는 부모와 함께 의식을 마치고 나오는 기모노 차림의 어린 소녀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우리도 이어가고 싶은 부러운 전통이라는 생각을 했다.


넓은 경내에는 매화와 녹나무, 꽃창포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지며 다양한 축제가 이어진다. 사슴들이 자유롭게 거닐며 관광객들에게 먹이를 얻어먹으려 달려드는 풍경도 이채로웠다.


신사에서 나오는 , 우리는 양쪽 가게에서 파는 우메가에 모치를 먹었다. 달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여정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음식문화가 달라서인지, 식당에서 주는 음식만으로는 배가 허전하곤 했다.


어느덧 해가 서산에 걸리며 아쉬운 일본 여행도 끝을 향하고 있었다. 버스는 후쿠오카 공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며


후쿠오카 비행장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는 고국 사람들로 가득 찼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듯한 젊은 남녀들의 얼굴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밝고 믿음직스러웠다. 우리나라는 이제 비로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 노력하고 있다.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젊은 세대 앞에는 무궁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나는 그들이 과거의 역사를 교훈 삼아, 홍익인간의 정신을 잃지 않고 당당히 전진하길 바랄 뿐이다.


나는 딸아이에게도 이번 여행에서 느낀 일본의 어제와 오늘을 들려주고 싶다. 서양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동양의 정신 또한 잊지 않고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딸아이는 1 계획을 세우고 한국어와 한국문화와 역사를 배우러 한국에 갔다. 지금은 여섯 달째 할머니와 함께 살며 어학연수를 하고 있다. 나의 일본 여행이 딸이 조국을 배우는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한국으로 향했다.


2025년 후기


글을 쓴 지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의 시점에서 일본을 바라보면 아직도 마음이 복잡하다.

요즈음 한일 관계는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과거사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해 악화일로에 있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마저 끈질기게 문제 삼고 있다. 전범국가로서 저질렀던 만행을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을 겪으며 초토화된 나라였다. 역시 동족상잔의 전쟁 후유증 속에서 아프게 살아왔다.

그러나 고통을 이겨내고 오늘의 자리에 우뚝 선 우리 민족을 돌아보며 자랑스러움으로 벅차다.


K-팝으로 시작해서 K-방역, K-드라마, K-화장품 K-음식 요즈음은 K-방산까지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그 대열에 K-정치도 끼어야 할 것이다.


요즈음 일본에서도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 그리고 젊은 세대들의 창의적인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오랜 세월 쌓아온 한국인의 저력과 정신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증거라 생각한다.


이제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되, 증오에 머물지 않고, 서로 배울 것은 배우며 미래를 열어가야 할 때다. 일본 여행에서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 역사는 잊지 말되, 평화와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나는 다음 세대가 과거의 상처를 딛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또 세계 시민으로 당당히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여행이 내게 남긴 가장 선물이자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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