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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애정과
껄끄럼
사이, 일본
by
국화리
Aug 29. 2025
애정과 껄끄럼 사이, 일본
-여행과 사색의 기록-
제3부
관서 기선을 타고 뱁부로
11시간이 걸리는 먼 뱃길에 올랐다.
선실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뒤
갑판으로
나갔다
.
불빛이
찬란한
다리가
깜깜한
공간
속에서
둥근
곡선을
보여주며
서
있었다
.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저마다의 승객들이 이 아름다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동안
갑판에서
떨다가
나는
4
개의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
일행인
여자들과
침대에
누워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
우리가
단잠에
빠져
있는
동안
배는
쉬지
않고
남쪽을
향해
항해를
계속했다
.
다음
날
,
밝은
햇살을
받으며
배
안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쳤다
.
드디어
일본
남쪽
지방
,
규슈에
도착했다
.
태양과 자연의 나라, 뱁부
규슈에는
6
개의
국립공원과
7
개의
국정공원이
있다
한다
.
우리는
오오이타현
뱁부
시에
도착했다
.
지금까지
다녀왔던
도시와
달리
,
평화롭기만
한
전원도시가
펼쳐졌다
.
쯔루미
다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뱁부의
전경을
내려다보니
,
나지막한
산자락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
유황
온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였다
.
내게는
불타는
산간도시처럼
인상
깊게
남았다
.
뱁부는
온천이
3,800
여
개나
되는
온천
천국으로
,
신혼여행지로도
유명한
휴양지다
.
우리가
찾은
곳은
지옥
온천이었다
.
지하
200~300
미터에서
분출되는
증기와
열기가
무섭게
솟아올랐다
.
푸른색
,
황토색을
띠는
온천탕은
신비롭게
느껴졌다
.
이어
유황가루
생산
공장을
견학했다
.
온천수가
부족한
곳에서는
이
가루를
물에
풀어
사용한다
한다
.
나는 본고장에서 진짜 유황가루를 사 들고 나오며 기대에 부풀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꽃
직경이
30~40
센티미터나
되는
연꽃이
떠
있는
연못과
통나무처럼
굵은
대나무
숲이
있었다
.
다시
이동해
2
천여
마리의
원숭이가
자생하는
자연
원숭이
공원에
올랐다
.
원숭이
사회에는
세
조직이
있는데
,
이날은
5
백여
마리
한
그룹이
내려와
여유롭게
놀고
있었다
.
우두머리
원숭이에게는
두
마리의
첩이
있어
서로
질투하며
싸우기도
하고
,
조직끼리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
조련사의
설명을
듣자
,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 떠올랐다.
스기노이 팔레스호텔에서의 휴식
하루를
보내고
숙소인
스기노이
팔레스호텔에
도착했다
.
유카타를
입은
관광객들로
넓은
실내는
붐볐고
,
객실에는
넓은
더블
베드룸과
다다미방이
준비되어
있어
귀빈
대접을
받는
듯했다
.
나는
유카타로
갈아입고
저녁식사장으로
내려갔다
.
일본식
뷔페는
메뉴가
다양했으며
,
대부분
한국인과
중국인이었고
서양인은
드물었다
.
호텔
내
온천장
시설도
훌륭했다
.
관광 후
피로를
풀기 위해
밤에는
싸늘한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별들 사이로 어머니와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여행을
취소할
뻔했지만
,
손녀딸의
정성
덕분에
상태가
좋아져
일본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방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니
처음
입어본
일본
의상도
제법
잘
어울렸다
.
소식을
하던
내
몸이
일본
여인들을
닮아
가고
있는
듯
느껴졌다
.
다다미방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
일본과 조선, 그리고 ‘화’(和)의 정신
일본은 섬나라라 서로 싸우면 바다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자각이 있었다. 그래서 ‘和’(조화, 평화)를 이루며 살아야 했다.
7세기 쇼토쿠
태자는
이를
법으로
지키게
했고
,
이후
일본의
사고방식과
국민
윤리로
자리
잡았다
.
국민들은
자기
분수를
알고
,
남에게
폐가
되지
않으며
,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
명치유신
이후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고
,
상업과
경제가
발달하면서
사무라이
계급제도가
무너지고
국민들의
전문성이
높아졌다
.
반면
조선은
성리학의
당파싸움과
부패로
민심이
흉흉했고
,
결국
외세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
일본은
내란과
세력
다툼이
있었지만
외침을
받지
않아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
일본은
경제는
1990
년부터
흔들리고
있으나
,
정보통신과
신세대의
변화
속에서
다시
대개혁을
맞이하고
있긴 하다.
정상에
오르면
내리막 길뿐이라는
주역의
가르침처럼
,
교만하지
않고
때를
준비해야
함을
깨닫는다
.
예쁜 유후인 마을
유후인
,
안개로
유명한
이
마을에서
나는
여유롭게
거리를
거닐며
쇼핑을
즐겼다
.
마을의
작은
상점들은
마치
유럽의
소도시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
‘행복의
언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후쿠오카현은
자연환경이
아름답다
.
가는
도시마다
따뜻한
동네처럼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
오후에는
다자이후시에
있는
다자이후텐만구
(
太宰府天滿宮
)
를
방문했다
.
이
거대한
신사는
학문의
신
,
스가와라
노
미치자네를
모시고
있다
.
그는
901
년
우대신
(
우의정
)
직위에서
갑작스레
다자이후
관리로
좌천된
뒤
,
불과
2
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입학 전 아이들이 이곳을 찾아 학문에 입문하는 의식을 치른다. 나는 부모와 함께 의식을 마치고 나오는 기모노 차림의 어린 소녀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우리도 이어가고 싶은 부러운 전통이라는 생각을 했다.
넓은
경내에는
매화와
녹나무
,
꽃창포
등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지며
다양한
축제가
이어진다
.
사슴들이
자유롭게
거닐며
관광객들에게
먹이를
얻어먹으려
달려드는
풍경도
이채로웠다
.
신사에서
나오는
길
,
우리는
양쪽
가게에서
파는
우메가에
모치를
사
먹었다
.
달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여정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
그러나
음식문화가
달라서인지
,
식당에서
주는
음식만으로는
늘
배가
허전하곤
했다
.
어느덧
해가
서산에
걸리며
아쉬운
일본
여행도
끝을
향하고
있었다
.
버스는
후쿠오카
공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
여행을 마치며
후쿠오카
비행장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
기내는
고국
사람들로
가득
찼다
.
출장에서
돌아오는
듯한
젊은
남녀들의
얼굴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밝고
믿음직스러웠다
.
우리나라는
이제
비로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
노력하고
있다
.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젊은 세대 앞에는 무궁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나는
그들이
과거의
역사를
교훈
삼아
,
홍익인간의
정신을
잃지
않고
당당히
전진하길
바랄
뿐이다
.
나는
딸아이에게도
이번
여행에서
느낀
일본의
어제와
오늘을
들려주고
싶다
.
서양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
동양의
정신
또한
잊지
않고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딸아이는
1
년
계획을
세우고
한국어와
한국문화와
역사를
배우러
한국에
갔다
.
지금은
여섯
달째
할머니와
함께
살며
어학연수를
하고
있다
.
나의
일본
여행이
딸이
조국을
배우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부푼
가슴을
안고
한국으로
향했다
.
2025년 후기
이
글을
쓴 지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
지금의
시점에서
일본을
바라보면
아직도
마음이
복잡하다
.
요즈음
한일
관계는
위안부
문제
,
강제징용
문제
등
과거사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해
악화일로에
있다
.
일본은
독도
영유권마저
끈질기게
문제
삼고
있다
.
전범국가로서
저질렀던
만행을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다
.
한국은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을
겪으며
초토화된
나라였다
.
나
역시
동족상잔의
전쟁
후유증
속에서
아프게
살아왔다
.
그러나
그
고통을
이겨내고
오늘의
자리에
선
우뚝 선
우리
민족을
돌아보며
자랑스러움으로
벅차다
.
K-팝으로 시작해서 K-방역, K-드라마, K-화장품 K-음식 요즈음은 K-방산까지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그 대열에 K-정치도 끼어야 할 것이다.
요즈음
일본에서도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
,
그리고
젊은
세대들의
창의적인
문화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나는
이것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
오랜
세월
쌓아온
한국인의
저력과
정신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증거라
생각한다
.
이제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되, 증오에 머물지 않고, 서로 배울 것은 배우며 미래를 열어가야 할 때다. 일본 여행에서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 역사는 잊지 말되, 평화와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나는 다음 세대가 과거의 상처를 딛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또 세계 시민으로 당당히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여행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자
깨달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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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리
소속
한국산문작가협회이사
직업
출간작가
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
저자
서울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미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1982년 미주로 이민 후 30여 년간 한의사로 활동했으며, 20여 년간 글쓰기에 매진하며 작가의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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