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그랜드 캐년, 그 대자연 앞에 서서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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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년, 그 대자연 앞에 서서’


훌쩍 떠나고 싶은 여름의 끝자락, 나는 또다시 위에 올랐다.

이미 여러 차례 다녀온 곳이었지만, 글을 쓰는 이들과 함께 떠나는 여정은 다른 설렘이었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식탁에 앉듯, 며칠간의 외출이 간절히 그리웠다.


입추가 지났건만, 여전히 대지를 달구는 열기 속을 버스는 달린다. 사막에는 선인장처럼 짤뚝한 나무들이 독버섯처럼 듬성듬성 솟아 있다. 지루한 사막길을 견뎌야만 눈부신 도착지를 만날 있다.


, 기다림의 형상이 눈앞에 잡히기 시작했다.

호텔 속으로 들어서자, 사이 더욱 비대해진 도시의 모습이 펼쳐졌다. 라스베가스였다. 사막 한복판에 세워진 인간의 조형예술.


부와 소비문화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 도시에서, 우리는 환상의 세계를 잠시 맛보았다.


호텔의 천장에는 구름과 노을빛까지 그려 넣은 인공 하늘이 있었다. 그러나 바람도, 냄새도 없는 하늘은 답답했다. 무대 , 석고여인은 외로이 있었다. 정호승 시인이 조심스레 다가가 팁을 놓고 그녀 곁에 섰을 , 조각상은 연인처럼 되살아났고 무대는 춤추듯 빛났다.

쥬빌리 , 눈부신 조명과 화려한 몸짓들


인간의 욕망은 꽃처럼 피어났으나, 그 향기는 잠시였다.


밤이 깊어 침대에 누웠으나 눈은 감기지 않았다. 지구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굶주림에 쓰러지는 생명들이 있다.


이 작은 도시의 찰나의 쾌락과 그들의 고통을 나란히 생각하니, 아이러니가 깊게 파고들었다.


새벽, 해가 뜨기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시간을 달려도 반복되는 사막 풍경, 건조하게 살 있는 자슈아 나무들.

지루함으로 뒤틀릴 때 나타나는 신기루. 그리고 마침내, 신이 빚은 걸작 그랜드 캐니언 앞에 섰다.


극장에서 먼저 기록영화는 19세기 탐험대가 콜로라도 강을 따라간 여정을 재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물 앞에서는 어떤 영상도 무력했다.

전망대에 서자, 계곡은 붉은 줄무늬와 성채 같은 암벽으로 끝없이 펼쳐졌다.


숨소리조차 삼켜버리는 고요. 오직 대자연만이 하늘 아래 서 있었다.


나는 순간, 이름 없는 작은 벌레가 되어 바위틈을 기어 다니는 느껴졌다.


수십억 년의 침묵과 고통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이 계곡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한낱 티끌에 불과했다.


계곡의 붉은 속살을 바라보니, 지구의 심장이 찢기던 순간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아픔과 고통이 아니고서는 피어날 수 없는 아름다움 ― 그랜드 캐니언은 고통의 미학 그 자체였다.


나는 문득 안의 상처들을 떠올렸다. 지워낸 알았으나 되살아나는 고통들. 관계의 파편, 상처의 잔향. 수많은 수련회와 기도회, 세계여행 속에서 찾으려 했던 위안들. 그러나 이제, 눈앞의 거대한 계곡은 내게 다른 깨달음을 준다.


수십억 년의 세월이 지구를 치유했듯, 인간의 상처 또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라스베가스가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면, 그랜드 캐니언은 영혼의 갈증을 해갈시켜 주는 샘물이었다.

인간의 작품은 목마름을 낳고, 자연의 작품은 위로를 건넨다.


나는 다시금 심장의 박동을 느꼈다. 온몸에서 샘물이 솟듯, 삶은 여전히 나를 부르고 있었다. 건너편에 모여 있는 일행들이 마치 무리의 꽃처럼 보였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나는 알았다.

인간은 안개와 같지만, 동시에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2009 여름


[필자 메모]


2010, 한국 산문으로 등단한 수필이다. 그때 글을 2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다듬어 여행기에 실어 본다.


내 안에 쌓이기만 했던 언어와 감정들을 절제해 정리하고 나니, 마음 한쪽이 한결 가벼워졌다. 덜어낸 자리에 새 숨이 들어오듯,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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