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실크로드를 가다(1부)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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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가다]


서문


길은 언제나 사람을 부른다. 세상에서 오래된 길의 한 곳인 실크로드 위에 섰다.

사막과 설산, 오아시스와 고성(古城)이 이어진 풍경은 단순한 땅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문명이 지나간 자취와 인간이 남긴 꿈, 그리고 시간이 쌓아 올린 서사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인류가 서로에게 닿고자 했던 간절한 발자취였다.

여고 졸업 40주년을 맞아 마흔 명의 동기들과 함께 떠난 여정이었다. 북경 상공을 날던 비행기 안, 졸업 이후 처음 만난 친구의 손에 들린 두툼한 자료집이 말해 주었다.


‘역사의 심장부로 들어가고 싶은 우리들의 탐방이구나.'


우루무치에서 시작해 투르판과 둔황을 지나, 서안에 이르기까지 모래바람에 깎인 유적 앞에서, 천 년을 품은 벽화 앞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가 겹쳐드는 신비를 마주했다. 때로는 발자국처럼 희미하게, 또는 성벽처럼 또렷하게, 그 흔적들은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이 글은 그 울림의 기록이다. 길 위에서 내가 바라본 풍경과 만난 사람들, 가슴에 새겨진 떨림을 옮겼다. 실크로드가 품은 이야기와 숨결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실크로드는 끝나지 않는 길이다. 그 길은 지금도 바람 속에서, 별빛 속에서,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서 다시 이어 갈 것이다.



제1부


우루무치, 동양의 서역풍


밤하늘이 깊이 내려앉은 시각, 우리는 중국면적의 1/6이라는 우루무치에 첫발을 올렸다.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고대 실크로드의 심장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중심이었다.

거리에는 아랍풍 얼굴들이 오고 가고, 푸른 돔의 이슬람 사원이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위구르족, 한족, 회족, 카자크족… 서로 다른 민족이 얽혀 짜낸 문화의 무늬가 낯설면서도 신비로웠다. 거대한 나라의 역사 속에서 이처럼 다채로운 빛깔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1. 천산의 푸른 보석, 천지


타클라마칸 사막의 황량함을 가르듯 솟아오른 천산 산맥.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된 무궁무진한 산맥이다. 해발 7천 미터가가 넘는 최고봉이 있으며 박격달봉 만년설이 녹아내린 눈은 푸른 호수를 이루어 천산천지라 불린다. 바람은 매섭게 불어왔으나, 호수는 장대한 고요로 우리를 감쌌다.

‘하늘나라 서왕모가 목욕했다’는 전설이 떠돌 만큼, 이곳은 신비로운 빛을 품고 있었다. 백두산 천지가 준 엄숙한 위엄과는 달랐지만, 그 물줄기가 땅을 적시며 사람과 가축의 삶을 지탱해 온 사실만으로도 이곳은 생명의 젖줄이었다.

천지에 오르면 기후변화는 하늘마음이다. 마침 구름이 걷혀 호수의 전경을 볼 수 있어서 모두가 ‘야호’로 화답했다.


2. 역사를 품은 사막의 미라


신장 위구르 박물관은 사막이 지켜낸 역사의 보고였다. 건조한 기후 덕에 수천 년 전 사람들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유명한 전시물 중 하나는 누란 미인으로 알려진 고대 미라와 소하 공주 등 신장 지역에서 발굴된 수십 구의 미라이다.

누란을 지배하는 자가 오아시스를 찾아 하는 자다,라는 세력의 열강들 앞에서

누란은 버티지 못하고 1600년 전에 사라졌다. 누란의 미인이 미라로 현대에 왔다. 사망당시 40~45세 여성의 시신은 모직물과 양피로 된 옷과 가죽 신발을 신고 있었으며, 머리를 감싼 스카프형도 눈길 끄는 여인이었다.

누란미인은 발견 직후 화제가 되어 소설과 시, 노래 등의 모티브가 되었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미라이지만 김춘수의 시 <누란의 사랑>과 작가 윤후명의 소설 < 둔황의 사랑> 등 상상의 날개를 달고 작품으로 이어졌다. 미녀는 죽어서도 죽지 않고 인간의 호기심으로 돼 살아난다.

부부가 나란히 누운 채 잠든 듯한 모습도 있었다. 그 평화로운 안식 앞에서 나는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사랑이 사막 속에서 영원히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옷을 입은 채 바싹 말라버린 미라들. 그 얼굴과 손끝은 시간의 강을 건너온 증인이었다.

아스타나 고분을 지하 박물관이라 부른다. 고창국의 공동묘지로서 고분 수천 개가 있다. 그중 몇 개의 고분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사막에 잠든 고대 귀족들의 무덤, 서진 태시 시대의 무덤에서 당나라 미라까지, 천 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누워 있었다. 그들의 닫힌 눈꺼풀 아래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3. 말을 타고 초원을 향해


우루무치 남쪽으로 두 시간을 달리자 천산의 북쪽 기슭이 우리를 맞았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 들판과 그 위에 둥실 떠 있는 푸른 하늘,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과 말들의 무리가 어우러져 평화로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 속에 카자흐족의 둥근 집, 파오(Pao)가 색색의 모자처럼 박혀 있어 풍경은 더욱 이국적이었다. 자연이 뿜어내는 생명의 향기에 젖어드는 순간, 지상의 평화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생각하며 그들이 대접하는 우유 향 그윽한 전통차를 마셨다.


이윽고 수백 마리의 말들이 기다리는 남산 목장에 도착했다. 간단한 주의사항을 들은 뒤 각자 고삐를 쥐고 말을 고르는 순간,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 찾아왔다. 말 등에 올라타자 발끝까지 전해오는 생명의 힘에 심장이 뛰었다. 마부가 묵묵히 앞서 이끌자, 우리는 천천히 목장 길을 따라 행렬을 이루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늘어선 우리들의 모습은 도시에서 가져온 문명의 꽃 같았다. 우리는 빨리 시들지 않게 유목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 대지를 흡수했다.

이 대륙의 한 모퉁이에는 여전히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현대 문명의 소음과는 동떨어진, 그러나 인간다운 삶의 본질에 가까운 그들. 말을 타며 스쳐간 그 바람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머물렀다.


4. 교하와 고창, 사라진 왕국의 흔적


버스는 서쪽의 교하고성으로 향했다. 두 하천 사이 벼랑 위에 세워진 천혜의 요새. 진한 시대 이래 서역의 관문이었던 이 도시는 원나라의 침공에 파괴되었지만, 흙벽돌로 지어진 성벽은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성 안에는 불탑, 사원, 관청과 감옥의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나무 한 그루 없는 폐허 속은 바람만이 스쳐갔다. 돌무더기 위를 거닐며 나는 문득 귀 기울였다. 14세기, 화약과 철병 앞에서 활과 창이 속수무책으로 꺾여나가던 그들의 울음소리가 아직 이곳에 메아리치는 듯했다. 역사의 힘의 논리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투루판 동쪽의 고창고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원전 1세기에 세워져 후한 멸망 뒤 번성했으나, 13세기의 전란 속에 무너져 내렸다. 흙바람 속에 모습을 드러낸 고창고성은 외성과 내성, 궁성이 겹겹이 둘러싸인 도시국가였다. 마차를 타고 성터를 돌아보니, 벽돌은 농부들의 비료로 쓰이며 무너져 흔적만 남아 있었다. 허물어진 흙벽 위에 서 있자니, 사라진 왕국의 영혼이 바람결에 한숨처럼 스쳐갔다.

붉은 대지가 길게 뻗어 있는 화염산을 지나며, 나는 서유기의 삼장법사 일행이 겪었던 고난의 장면을 떠올렸다. 불길이 치솟는 듯한 산맥의 형세가 신화와 전설을 품어낸 까닭을 알 듯했다. 벼랑 위의 성곽은 아직도 그 위엄을 잃지 않았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불탑과 사원, 감옥만이 황량한 터에 남아 있었다. 그 돌벽 사이로 사라진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강한 자 화약이 우리의 창과 활을 녹여버렸구나 “


5. 칸얼정, 그 생명의 첫 줄


사막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도전이 있었다. 위대한 유산 중 하나가 바로 칸얼정(坎兒井)이다. 수세기동안 아버지들이 목숨을 갈아 넣어 낸 수로와 우물이다.

천산산맥의 설산에서 녹아내린 물. 이물을 사막기후에 마르지 않도록 땅속 깊이 물 길을 내고 곳곳에 우물을 판 것이다. 만리장성, 대운하와 함께 중국 3대 토목공사라 불리며 그 길이가 삼천리강산의 세 배에 달 한다 하니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어두운 수로 안으로 내려갔다.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눈 녹은 물이 힘차게 흐른다. 차가운 물결에 손을 담그니 사막의 열기가 스르르 꺼졌다. 이 마르지 않는 우물의 물든 투르판의 대지위에 포도산지를 만들고 과일을 달게 만들었다. 생존을 위해 땅을 파고 물길을 낸 옛사람들의 끈기와 지혜가 눈앞에 흐르고 있다.

아버지는 땅을 파고 또 파고, 아내는 흙을 나르고, 아이들은 돌을 고르고….


6. 뜨거운 땅, 투루판의 기억


‘움푹 팬 땅’이라는 뜻의 투루판. 중국에서 가장 낮은 분지라 여름이면 불덩이 같은 열기가 내리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화염(火焰)의 땅’이라 불렀다. 고대로부터 서역의 중심지였던 이 땅은 천산의 주봉에 둘러싸여 황량하면서도 웅장한 품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염 땅을 헤치고 지나던 삼장법사의 목소리도 들린다.

칸얼정으로 오아시스를 만들고 포도 농사를 지었던 투루판 사람들.

그들의 포도마을에 들어서자 담장마다, 가로수마다 포도 덩굴이 걸려 있었다. 뜨거운 햇살과 큰 일교차에 단련된 포도는 알이 크고 당도도 높았다. 포도 덩굴로 지붕을 얹은 농가의 마루에 앉으니, 달콤한 수박이 갈증을 씻어주고, 흥겨운 음악이 어느새 우리를 춤판으로 이끌었다. 위구르 남성이 가볍게 손을 꼬아 돌리는 춤사위에, 소녀 같은 여인이 합세해 무대를 완성했다. 그 유연한 동작 속에서 나는 이슬람 문화의 숨결을 가까이 느꼈다.

밤이 되자, 위구르 가무단의 무대가 열렸다. 원색의 의상, 짙은 화장, 그리고 불꽃같은 춤사위.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는 춤은 어느새 별빛과 뒤엉켜 절정에 달했다. 무희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손을 잡아 이끌자, 국적도 피부색도 다르던 이들이 하나 되어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 흥과 열정은 어쩌면 우리 민족의 ‘흥’과 닮아 있구나.”

공연이 끝난 뒤 화려한 의상의 무희들과 사진을 찍으며, 투루판의 밤은 하나의 긴 축제처럼 가슴에 남았다.


첫 여정인 우루무치에는 사막과 설산, 문명과 종교, 사라진 나라의 애통과, 인간의 끈기, 그리고 삶을 노래하는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거대한 서사시였다. 사막은 고요했지만, 그 속에 살아 있는 역사의 목소리는 지금도 내 귀를 두드린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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