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숙녀회와 멕시코 문화 탐방(1부)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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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녀회와 멕시코 문화 탐방


여행을 시작하며


멕시코는 미국과 긴 국경을 맞댄 이웃이지만 자주 가지는 못했다. 미주 한인 교회들의 선교 사업 덕분에 국경 근처 마을인 티후아나를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본 것은 빈민가에 식료품을 나누고 의료 봉사를 하며 본 그들의 비참한 생활환경뿐이었다.

멕시코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열망이 이루어졌다. 모교 졸업생 화가들의 모임인 <숙란회> 해외 첫 전시회(2008년)가 로스앤젤레스 한국 문화원에서 열렸다. 스무 차례가 넘는 국내 전시를 이어온 숙란회가 미주에서 회원 약 20명이 참가하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성공적인 개막식을 마치고, 숙란회는 미주 동문들과 함께 멕시코 문화 탐방을 했다. 화가들의 가장 큰 관심은 멕시코 국민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만나보는 것이었다. 금속공예가인 김승희 교수가 참여하면서 미주 동기생들도 여럿이 합류해 뜻깊은 여행길이 되었다.

LA에서 네 시간의 비행 끝에 밤늦게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본 도시는 미국의 황홀한 야경과는 달리 붉은 불빛이 감도는 어둑한 모습이었다. 숙소인 호텔에 들어서자, 원색의 토속적인 조각물로 장식된 분위기에서 멕시코 특유의 흥겨운 마리아치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한 설렘이 일었습니다.

이번 여정은 멕시코시티에서 아즈텍(Aztec) 문명의 숨결을 느끼고, 화가 프리다 칼로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에는 비행기로 휴양지 칸쿤(Cancún)으로 이동해 리조트에서 스노클링을 즐긴 뒤, 그곳에 남아있는 마야(Maya) 문명의 신비를 만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는 유카탄(Yucatán) 반도의 메리다(Mérida)를 찾아 멕시코 한인 이민의 역사를 직접 마주하는 일정을 가지고 있다.



제1부:


멕시코시티, 고대 문명의 심장


한라산보다 높은 고원 지대에 자리 잡은 멕시코시티는 서울의 두 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이다. 이곳에 2만 년 전의 유적이 발견되어 인류의 오랜 거주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기원전 8000년경에 옥수수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기록도 놀랍기만 하다.

13세기부터 강력해진 아즈텍 문명은 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피라미드들을 통해 그 힘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16세기,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침략했을 때, 아즈텍인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도와주러 온 줄 알고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나라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어이없이 나라를 빼앗긴 아즈텍의 찬란한 문명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스페인은 새로운 신의 이름으로 호수를 메워 도시를 세웠고, 원주민의 제단 위에는 성당을 올려놓았다. 정복의 역사는 언제나 약소국의 한과 눈물로 남는 법이다.



소칼로 광장: 지배의 상징, 구원의 중심


옛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심장부였던 소칼로 광장에 도착했다. 중앙에 멕시코를 지배했던 큰 궁전이 눈을 잡는다. 현재는 대통령궁으로 사용한다. 그 내부에는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해서 무척 궁금했다.

오른쪽에는 라틴 아메리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이 성당은 아즈텍의 대신전 유적 위에 세워졌는데, 이는 정복자들이 피정복민의 종교 건축물을 말살하려는 의도이다.

나라를 빼앗겨도 전통의 믿음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변화의 불씨는 뜻밖의 곳에서 일어났다. 원주민에게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과달루페는 성모 발현지로 폭발적인 가톨릭 개종을 이끌어냈다. 이는 태양신 등 고대 신앙에서 새로운 종교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으며, 정복 이후 혼란스러웠던 원주민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이 되었다. 그들의 잔혹했던 토착 신앙이 새로운 신앙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테오티우아칸, 신들의 도시


멕시코 전역에는 2,000여 개에 달하는 피라미드 유적이 있다 하지 않는가. 피라미드라면 이집트의 파라오의 무덤인 스핑크스가 있는 산 같은 피라미드만을 알고 있었다.

테오티우아칸(Teotihuacán) 유적지에는 성벽을 이룬 듯 수많은 피라미드가 모여 있어 경이로움 자체였다. 이 피라미드들은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2~3세기에 짓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파라미드의 정교한 건축술과 규모에 취해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을까. 신의 제단에서 행해지는 의식들. 사제는 피라미드를 올라 신에게 제사드릴 때 저 군중들의 눈동자를 보라! 그곳에 서있는 내 발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이었던 것과 달리,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신의 제단으로 사용되었고 주위의 작은 피라미드는 제사장들의 주거지로도 사용되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는 ‘태양의 피라미드’. 서기 200년경에 지어졌다.

‘죽은 자의 거리’를 따라 달의 피라미드와 케찰코아틀 신전 사이에 있다.

정중앙, 자로 잰 듯 엄격한 규격으로 만들어진 약 250여 개의 계단을 오른다. 땀 흘리며 정상에 서니, 전망대 같았다. 고원 도시의 광활한 풍경이 사방으로 끝을 모르게 펼쳐졌다. 수십 개의 피라미드가 저 멀리까지 사열하듯 양쪽으로 서 있는 풍경에 넋을 잃었다. 멕시코의 얼굴이었다.

케찰파팔로틀 궁전 앞에서는 사람들이 신전을 향해 모두 손뼉을 쳤다. 그 공명 현상에서 새가 우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는 케찰(Quetzal)이나 다른 신성한 새를 상징하는 소리로 여겨졌다. 왕이 이곳에서 이야기를 하면 멀리 서 있는 민중들도 들을 수 있었다니, 그리스 고대 극장을 떠올리게 했다. 마이크나 확성기가 없던 고대 건축가들의 과학적이고 주술적인 건축 기술에 현대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 문명과 현대 멕시코인의 삶


놀라운 건축술과 과학 기술을 가졌던 고대 문명의 후예인 멕시코인들.

아즈텍 문명의 종교의식은 잔혹했다. 그들은 신에게 주로 전쟁 포로를 제물로 바쳤으며, 젊은이의 펄펄 뛰는 심장을 꺼내 제단에 바쳤다. 심지어 어떤 지역에서는 가장 건강하고 잘생긴 청년이 신에게 선택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고 한다. 뜨거운 피를 신에게 바쳤던 의식은 그들의 신앙의 열렬함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들의 야만성을 비난하며 정복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지 않았을까.

장엄한 유산과 300년의 스페인 식민 지배의 잔재, 그리고 현대 멕시코인의 삶이 공존하는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현재 멕시코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이다. 일요일마다 성당에서 예배드리고 교리에 따라 유산하지 않아 출산율이 높다. 가난하지만 굶지 않고 의료 혜택이 있어 국민이 행복하다고 한다.

내가 사는 한인 타운에는 멕시코인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은 정원 청소나 건축 노동 등 힘든 일을 하는 일꾼들이 많다. 인디언 원주민인 그들의 조상이 이 거대한 문명을 일구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그들이 달리 보였다. 지금 가난하고 힘들게 살고 있지만 그들 피 속에 위대한 조상의 자부심은 크리라.



동문들과의 밤


식사 자리마다 반가운 담소가 이어졌다. 삼십여 년 만에 만난 이숙자 화백 부부는 얼마나 반가운 재회였는지. 미녀 누드를 주로 소재로 했던 화풍에서 '보리밭 시리즈'로 호평을 받으며 '보리밭 작가'가 되었다. 예전 가까이 살던 시절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교사의 길을 접고 꿈을 찾았다. 천경자 화백의 뒤를 잇는 대가가 된 것이다. 김승희 교수와 이숙자 화백, 모두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예술가들이었다. 그들과 함께한 멕시코에서 우리의 우정은 더욱 깊어갔다.

호텔 창가에 서니, LA의 멕시코인들이 문득 떠올랐다. 순박하고 낙천적이며, 적게 벌어도 가족과 함께 웃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신의 피라미드를 세웠던 그들의 조상처럼, 오늘도 그들은 여전히 땅을 일구며 성실하고 순박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웃음 속에서 고대 문명의 꽃을 피웠던 생명들이 서서히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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