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숙녀회와 멕시코 문화 탐방(2부)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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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프리다 칼로 뮤지엄



코요아칸(Coyoacán)의 푸른 집


영화 《프리다》(2002)를 통해 그녀의 삶과 작품을 우리는 먼저 접했다. 당시의 강렬한 인상은 잊을 수가 없었다. 영혼의 화가에게서 화살을 맞은 것처럼, 우리 가슴도 함께 피를 흘려야 했다. 침대에 누워 자신의 마지막 전시회 파티를 참관했던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그녀를 향한 그 박수 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울린다.

그녀의 화풍은 초현실주의, 상징주의, 그리고 멕시코의 토속 문화가 깊이 녹아든 독창적인 예술 언어의 집합체로 평가된다. 20세기 페미니스트 아이콘으로 불리는 그녀의 삶의 근원, 코요아칸의 ‘푸른 집(Casa Azul)’이라 불리는 프리다 칼로 뮤지엄에 마침내 섰다.

이곳은 그녀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혁명적인 벽화가이자 연인이며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와 살던 곳이다. 사랑하고 싸우고 또 화해하며 살았던 안식처이자, 동시에 고통과 시련을 견뎌냈던 장소이기도 하다.



고통의 색채들


뮤지엄 입구에 서면, 벽을 이룬 강렬한 코발트블루와 정열적인 붉은색 창틀, 그리고 태양을 담은 듯한 노란색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목조 건물이 시선을 압도한다.

예약된 인원만이 입장할 수 있기에 집 주위로는 긴 줄이 이어진다. 작은 대문을 통과하면 넓은 정원이 펼쳐진다. 이곳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그녀의 그림 곳곳에 등장하는 멕시코 토종 식물들과 그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다. 정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는 관람객들의 모습에서 평온함이 느껴진다.

실내에 들어서면 그녀가 살며 소장했던 소품들과 가구들이 시간이 멈춘 듯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

그녀는 여섯 살에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가늘고 짧아졌으나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열여섯 살에 겪은 교통사고는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다시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것이며, 아이도 가질 수 없다는 절망적인 진단. 그녀는 척추 수술만 일곱 번, 서른다섯 번의 수술을 감당해야 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기나긴 시간. 어머니는 침대에 이젤을 세우고 화판을 놓아주었다. 천장에 달린 거울은 그녀가 누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거울을 보며 붓을 들던 모습은 아프도록 아름다웠다. 자신의 깨진 몸과 상처받은 영혼을 가장 정직하게 마주한 독학의 화가. 그녀는 자화상을 그리며 “나는 가장 잘 아는 주제인 나 자신을 그린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남긴 쉰 점이 넘는 독특한 화풍의 자화상들이 이를 증명한다.

가족의 헌신적인 돌봄으로 그녀는 마침내 다시 걷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동안 누워서 그린 그림들을 평가받기 위해, 그녀는 멕시코의 국민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찾아간다. 디에고는 그녀의 독창적인 화법을 단번에 알아보고 극찬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아버지 같고 스승 같은 화가와 사랑에 빠졌고, 마침내 디에고의 세 번째 아내가 된다. 하지만 바람둥이였던 디에고는 계속 외도를 했고, 심지어 프리다의 여동생과도 불륜을 저지르는 잔인함을 보였다.

결국 그들은 이혼했지만, 일 년 후 재결합했다. 디에고는 계속 바람을 피웠고, 프리다는 그 고통 속에서도 그림을 계속 그렸다. 그들은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는 부부로, 고통 속에 살면서도 서로에게서 헤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슬픔과의 포옹


뮤지엄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고통과 애증의 기록이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그녀는 기적적으로 세 번 임신했으나 모두 유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녀의 유산 경험을 그린 작품, 《헨리 포드 병원》(1932)은 병원 침대에 누운 프리다 자신이 등장하는 충격적인 자화상이다. 멕시코 민속화처럼 소박하게 그려졌지만, 공중에 떠 있는 붉은 혈관들이 그녀의 몸과 연결되어 유산된 태아, 달팽이, 깨진 골반뼈 등 고통의 상징물을 끌어온다. 이 작품은 물리적 고통을 넘어선, 어머니가 될 수 없었던 여성의 심리적 고통을 표현한다. 관람객들은 그녀의 고통이 단순히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예술의 언어로 번역된 인류 보편의 슬픔임을 느끼게 된다.

또한, 대표작인 《우주의 사랑의 포옹》(1949)은 디에고와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압축한다. 유년기의 모습으로 그려진 디에고를 어머니처럼 품에 안고 있는 프리다의 모습은, 단순한 부부 관계를 넘어 디에고의 아이 같은 남성적 속성을 수용하고 보호하려 했던 그녀의 사랑을 보여준다. 격정적이고 때로는 잔인했던 사랑을 초월적인 모성애로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그림은 《부서진 기둥》이다. 상반신을 벗은 몸에는 관능적인 두 개의 유방이 활짝 피어있다. 부서진 척추에 검고 긴 철판을 심고 몸을 지탱하기 위해 철제 코르셋을 입고 있다. 검은 긴 머리를 풀어헤친 그녀의 모습은 관능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용수처럼 아름다운 몸에는 수십 개의 못을 박아 고통을 표현했다. 미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만, 표정은 '나 잘 참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 흐트러짐 없이 섬뜩하다.



이혼 후 프리다의 데이트


남편의 여동생과 불륜을 목격하고 부부는 헤어진다. 그녀는 그 슬픔을 이기기 위해 회외로 나갔다. 뉴욕 초대전에서 그녀의 독창적인 화풍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매력도 넘치는 그녀는 남자들 아니라 동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맞바람을 쳤다. 그중의 미국의 사진작가와 사귀며 그는 수많은 그녀의 초상화를 남겼다.

파리전에서는 피카소와 모딜리아니도 전시회를 보고 우리는 아무도 그녀처럼 그릴 수없다고 극찬을 했다. 그녀는 피카소가 선물한 손가락이 흔들리는 손목 귀걸이를 달고 다녔다. 머리에 꽃장식을 달고 멕시코풍 색조의 디자인 옷을 입은 사진이

보오그지에 실렸다. 파리전에서도 대성공을 거두며 그녀의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 걸리는 영광을 누렸다.



마지막 전시회


이혼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디에고는 프리다를 다시 찾아 결혼해 줄 것을 간청했다.

둘은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프리다는 러시아에서 방문한 트로츠키와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불꽃같은 사랑은 트로츠키 부부가 멕시코를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녀의 척추는 다시 무너졌고, 발가락 괴사로 결국 절단 수술을 받았다. 프리다는 그 고통을 그림을 그리는 데 혼신을 다해 쏟아냈다.

디에고의 주선으로 멕시코에서 그녀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병으로 누워 지내던 그녀는 들것에 실려 자신의 개인전을 참관하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다음 해, 그녀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디에고도 3년 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사랑과 고통으로 얽혔던 그들의 결혼 생활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했던 침대의 등장을 잊을 수 없다. 들것에 실려 전시회장에 나타나 태양처럼 붉게 빛나던 그 얼굴,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그녀는 많은 말을 남겼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발이 왜 필요한가, 나는 날 수 있는데.”

그녀는 이제 우주를 날고 있다. 자유롭게 어느 별에서 보내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우리들 위로 내려앉는다.

‘내 앞에서 고통을 말하지 마라. 너도 나같이 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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