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더라-저자 국화리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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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더라- 수필집 『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의 저자 국화리

본명 Monica Jung Sook Lee Kim

황해도에서 태어나고 1.4 후퇴 때 대구로 떠남

숙명여고·서울교육대학 졸업, 교사로 근무

1982년 미주로 이주

1983년 미주 산타모니카에서 황제한의과대학 공동 창업, 부학장으로 근무

현재 한의사

jungkimumacupuncture@yahoo.com


막이 열리면 무대 위에 한 여자가 앉아 있다. 단정하지만 첫 고백을 앞에 둬서인지 좀 긴장감마저 느껴지는데, 이제 막 바다를 건너온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려 나는 의자를 당겨 앉는다. 한 편의 모노드라마 같은 국화리 수필집 『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을 한 장 한 장 펼쳐 읽다 보니 문득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가 겹쳐 떠오른다. 가냘픈 듯 강인한 나비가 그녀일까.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알려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태어나 보니 몇 년 후 아버지와 영원히 헤어질 운명이었다. 들판에 흔히 핀 국화라는 이름이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았던 그녀의 유년기 얼굴은 파란색이었다고 한다. 북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며 불면의 밤을 보내는 30대 과부의 슬픔이 곧 어린 국화의 슬픔으로 옮겨온 탓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내준 과제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고통 속에 있는 엄마 구하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게 되자, 작은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긴급 탈출을 감행한다. 어머니가 인생의 정점이었다고 회상하는 ‘하얀 집’을 선물한 동기이다. 그녀는 장소를 물색하고 인테리어, 간판, 운영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어둡고 죽어가던 금호동 거리에 따스한 소망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이십 대 초반에 이미 될성부른 사업가 기질을 보여준 사건이다.

국화의 ‘하얀 집’ 시대를 열었다. 해가 져서 어둠이 내리면 쇼윈도는 은은한 붉은 불빛을 뿜어냈다. 내가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엄마는 양장점 마담이 되었다. (23쪽)


결혼한 국화는 남편이 먼저 자리 잡은 미국으로 건너간다. 혼자 갔지만 남편의 듬직한 등에 업혀 간 셈이다. 모든 게 그저 잘될 것이라 믿었다. 미국은 젖과 꿀이 흐르는 청무우 밭이 펼쳐진 땅일 것 같았다. 꿈을 실현해 주는 지상 낙원일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그녀는 혼자가 되었다. 국화가 경험한 바다는 생각보다 깊고 험했다. 좌절 대신 현실의 한계를 인식하며 배우는 중요한 시기라고 받아들였다. 혼자 걷는다고 결핍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고자 하는 기본 목표가 있었기에 넘어질 수 없었다. 끊임없이 일을 벌이고 해결해 가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산타모니카로, 다시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면서 그녀는 경제적 주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날개를 파닥였다. 도전의 시기였다.


그 길 위에서 내 벌새 시절은 비와 눈과 바람을 맞으며 태양빛으로 영글었다. (47쪽)

그녀에겐 일로 성취감을 느끼는 것과 베푸는 일이 똑같이 중요한 무게였다. 그 시작은 어머니였고 이후 친구에게 부족한 미국행 비행기 티켓값을 선뜻 도와준 일로 이어진다. 소외된 것에 대한 측은지심이 평생 그녀를 따라다녔다. 낯선 나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인에게 거처를 마련해 준 일, 병이 깊어 병원에 오지 못하는 환자를 장거리 운전하여 방문한 일, 자서전을 썼으나 미완성인 채 멈춰 선 작가의 원고료를 대신 지급하기, 존경하는 철학가 김철희 선생의 마지막 길을 홀로 배웅한 일 등 일일이 언급하기 벅차다.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을 리 없건만 사람으로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일을 지나치지 않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흔치 않다. 한 사람이 가진 기품이기도 하다.


“선생님! 쇼생크 탈출 아시지요. 탈출하세요” 이어폰을 끼워드렸다. 오페라 휘가로의 결혼 중에 나오는 환상의 선율, 그리고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도 은은히 퍼지게 했다. 아름다운 음악의 세계에서 생의 기쁨을 간직하게 하고 싶었다. (143쪽)

책에 미처 쓰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았으리라. 사람과 사람의 일이라 이 과정에서 마음이 다치는 일이 어찌 없었으랴. “사기당하지 말고 좋은 곳에 기부나 하라”는 주변의 조언을 받는다는 고백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런 사건들은 알록달록한 그녀의 인생 목걸이로 남았다.

안락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하여 노력한 대가가 나타났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외로움이 찾아왔다. 지적 갈증을 메울 음악 감상과 그림 수집, 판소리를 배우고 춤에 빠져보기도 한다. 그러나 홀로 된 번민을 스스로 날려 보내는 건 한계가 있었다. 비밀은 그녀 스타일이 아니다. 끌리는 사람과의 데이트로 한 시절 설렘을 되찾기도 한다. 그중 압권은 『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에서 탁구 코치와의 핑퐁 데이트를 묘사한 이야기이다. 이 글은 당시의 현장감이 독특한 탄력으로 전해온다. 국화의 싱싱한 세포가 살아 뛰며 춤추고, 그녀의 솔직한 매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사랑 그릇은 이렇게 주고받음으로 채워지는 것을.


나의 가해자들이었다. 매의 눈으로 공을 쏘아보았다. 그들의 가슴과 머리를 스매싱으로 난타할 기회가 왔다. ‘피멍이 오래 가게!’라고 잔인하게 외쳤다. 살기 어린 얼굴은 마스크가 감추고 있었다. 억울한 마음이 남은 전 남편의 얼굴에도 몇 방 날렸다. 코치는 공을 다시 주며 소리치고 있었다. “모니카. 그 정도로 킬러가 될 수 없어. 공을 똑바로 보고 한 발을 나가며 허리를 빠르게 돌려!” 킬러 소리만 내 귀에 잡혔다. (178쪽)

그러나 거기까지.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에게 킬러가 되기엔 턱없이 여린 마음을 느낀다. 문제는 허술한 자신의 사고방식에 있다며, 대책 없는 사람들을 헤프게 도와준다고 그들을 배신자로 만든 건 자신이었는지 모른다고 반성한다.


치열한 노력의 알곡은 알차다. 국화는 자리를 탄탄히 잡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 그녀의 딸은 한의대학 최고 관리자가 되어 가업을 잇고 있고 국화는 한의원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제 편안하게 안주해도 되련만 그녀는 끝없이 자신에게 ‘왜 쓰는가’라고 묻는 자리로 되돌아온다. 기억조차 없는 뿌리가 그녀를 부른다. 조국 분단의 문제들을 희생자인 그녀의 시각과 성찰로 모국어로 쓰고 싶은 갈망이다. 그것이 그리움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영혼과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길이라 굳게 믿고 있다.


내 고향 산천에 끝낼 수 없는 서사가 있다. 아버지만 가슴에 안고 떠난 어머니와 우리 가족 이야기가. (132쪽)

국화리 수필집 『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은 모교인 숙명여고 졸업 60주년 행사에 맞춰 출간되었다.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반평생 넘게 산 진솔한 인생을 그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200여 명의 동기, 졸업생이 모인 자리에 미리 예약받은 100명에게 북사인회가 성대히 거행되었다. 특히 재단 이사장은 국화리 수필집을 읽고 모교 졸업생과 재학생들에게 좋은 도서로 추천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왔다. 한국산문 4월 행사에서 임헌영 교수에게 출간 기념패를 직접 받은 일도 기대 이상의 특별한 감동이었다.

미국에서는 『중앙일보』와 벨리신문에 신간 안내가 보도되었다고 한다. 장소현의 『문화잡화상』에 기사가 발표된 소식은 또 하나의 보너스이다.


가냘프던 한국의 나비 국화는 이제 아메리카의 민첩한 벌새로 변신하였다. 벌새의 자랑은 뛰어난 비행 능력이다. 1초에 60번이나 작은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설 수도 있다. 수필집의 제목은 ‘사랑을 말하고 싶은 날’이지만 내용은 ‘사랑을 행하는 일’로 가득하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고, 쉼 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날갯짓이라는 깨달음이 수필집 갈피갈피에 숨어 있다.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어서일까. 막을 내릴 시간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녀는 무대의 커튼 뒤에서 서성인다. 사랑 주머니가 한없이 큰 국화리 작가. 그녀의 뜨거운 모노드라마는 계속 이어지리라.


대담- 민경숙 indigo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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