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장편, 파리를 펴 들고

by 국화리
한국산문소개이미지.png


장편, 파리를 펴 들고


크리스마스 아침, 오랜 소망이 파리에서 피어났다.

젊은 시절, 딸의 작은 손을 잡고 서유럽을 횡단하던 길에 루브르를 만났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모나리자의 미소조차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거대한 인파의 파도에 밀려 박물관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 두 시간 남짓의 짧은 만남은 오랜 세월 가슴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남았다.


팬데믹이라는 어두운 시간을 건너오며 여행은 늦춰졌지만, 기다림의 무게를 딸은 알고 있었다.

“이번엔 장편 소설처럼 파리를 읽어보세요.”

루브르 사흘, 오르세 미술관 이틀, 로댕 미술관 하루. 딸이 일정표였다.


비행기에서 넉넉한 좌석에 놀라는 나에게 딸은 말했다.

“이번 여행은 엄마를 위한 선물이에요.”

순간, 딸의 어린 손을 붙잡고 다니던 시간과 지금 사이의 간격이 선명해졌다.

십수 , 딸은 혼자 유럽을 달간 여행하며 파리에서만 주를 머물렀다. 이번 여행이 우리의 오래된 갈증을 채워줄 있을까.


숙소는 루브르 맞은편. 우리는 파리의 중심을 걸어서 오갈 있었다.

“엄마, 여기 오래 살았던 도시 같아요.”

말에 마음이 놓였다. 딸은 이제 어느 도시에서도 낯설지 않을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루브르에서 세느강을 건너면 오르세 미술관이 보이고, 노트르담과 에펠탑도 멀지 않다. 파리의 도로에는 가로수가 드물고, 무채색의 건물들이 반듯하게 들어서 있다. 다듬어진 위에 세워진 건축물들은 수백 년의 시간을 견디며 확장되어 왔다. 육중한 속에 켜켜이 쌓인 문화의 질곡을 읽어갈 것이다. 세계에서 모여든 이방인들의 발소리가 겹겹이 포개진다.


루브르의 상징, 유리 피라미드


센강변의 루브르는 원래 요새였다. 프랑수아 1 이후 궁전으로 사용되었고, 루이 14세가 베르사유로 왕궁을 옮긴 한동안 비어 있었다. 나폴레옹은 이곳을 다시 궁전으로 삼아 전리품으로 모은 예술품과 유물을 전시했다. 세계를 정복하면서 문화와 예술까지 장악하고자 했던 야망이었다.


딸의 설명을 들으며 유리 피라미드 앞에 섰다. 두터운 겨울 코트와 모자, 목도리를 두른 인파 속에 우리도 섞였다. 하루 평균 3 명이 뿜어내는 감탄이 투명한 유리 위에 켜켜이 쌓이는 듯했다. 이오 페이의 작품이다.


우리는 드농관, 쉴리관, 리슐리외관을 하루씩 나누어 보기로 했다.

드농관 2 중앙 계단 ,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비상하고 있었다. 머리에 내려앉는 승리의 순간. 팔과 얼굴은 사라졌지만 바람을 가르는 옷자락과 날개의 힘은 오히려 상상의 비상을 부른다. 니케는 여전히 인생의 승리를 꿈꾸는 이들에게 말을 건다.


2층에서는 자크 루이 다비드 서거 200주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나폴레옹의 궁정 화가예요.”

대관식 장면 앞에서 우리는 그림 뒤편의 거울을 통해 장면을 바라보았다. 조제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나폴레옹. 그는 떠났지만, 존재감은 잡은 생선처럼 살아 있었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앞에서 딸은 오래 머물렀다. 1830 7 혁명의 열기가 깃발처럼 솟구쳤고, 귀족에 맞선 민중의 외침은 지금도 나의 가슴을 달궜다.


모나리자 전시실의 인파를 피해 나는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잔치」 앞에 섰다. 다섯 번이나 다시 찾아가며 장면을 묵상했다.

예술이라는 주인을 만나, 얼굴이 포도주처럼 붉어지고 싶다.

열망은 여행 내내 나를 끌어올리는 힘이 되었다.


리슐리외관에서는 프랑스 조각과 나폴레옹 3세의 아파트를 보았다. 권력과 부의 화려함은 충분히 드러나 있었다.

쉴리관에서는 함무라비 법전을 찾았다. 한국에 여섯 다녀왔다는 프랑스인 안내원이 유창한 한국어로 나를 전시실까지 안내했다. 정중함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느꼈다.


“눈에는 , 이에는 .”

인류가 얼마나 긴 시간 서슬 퍼런 문장을 붙들고 살아왔는지. 예수는 말을 불편해하며 “서로 사랑하라”라고 다독였을 것이다. 이제야 마음에서도 말이 편하다.


밀로의 비너스 앞에서 인류가 여성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오래 탐구해 왔는지 떠올렸다. 예술은 그렇게 시대를 건너 오늘과 내일을 잇는다.


이틀 동안 계단을 오르내린 다음 ,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저녁마다 딸은 부은 발을 마사지해 주었다. 손길 덕분에 다음 날이 가능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로 각인된 장소다. 복원된 첨탑과 이어지는 공사를 보며, 남대문이 불탔을 때의 우리를 떠올렸다. 끝에 들어선 성당 안에서 스테인드글라스의 푸른빛이 보석처럼 몸에 박혔다.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개조한 공간이다. 유리 천장으로 쏟아지는 자연광, 시간을 가로지르는 대형 시계. 고흐, 고갱, 모네, 마네, 르누아르, 세잔. 책에서만 보던 그림들 앞에서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밀레의 「만종」과 「이삭 줍는 여인」 앞에서는 오래 머물렀다. 평범한 삶을 성스럽게 끌어올린 그림은 우리의 일상과 겹쳐졌다.


마지막 날은 로댕 미술관. 정원을 품은 저택에서 「생각하는 사람」과 「칼레의 시민」, 「지옥의 문」 앞을 쉽게 떠날 없었다. 로댕의 작품들은 삶을 향한 집요한 질문으로 말을 걸어왔다.


일주일 동안 우리는 파리의 예술에 잠겼다. 장편소설을 펼쳐 들었지만, 이번에는 책장을 빠르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강물 같은 세월의 숨결을 조금 느낄 있었다. 다음에는 페이지마다 숨은 문장들을 천천히 읽으며 깊이 들어가고 싶다.


쓸쓸한 시간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자만이 예술의 세계에 닿는다고, 참고 견딘 끝에서야 빛이 쏟아지는 지점을 만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드골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

창밖으로 멀어지는 파리 위로 딸이 조용히 손을 잡았다. 한때 내가 잡고 세상을 건너왔던 작은 손은 이제 나를 이끄는 손이 되었다.

가이드의 밀착 안내 덕분에 파리의 겨울바람은 차가웠지만, 손은 오래도록 따뜻했다.


장편, 파리의 논픽션.

여행은 언젠가 다른 소설의 풍요로운 씨앗이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46. 모나리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