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2부 디오니소스의 무대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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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디오니소스의 무대

— 눈물이 웃음으로 익어가는 자리


국화리


아크로폴리스의 돌 성벽 위에 서면, 발아래로 쌓인 역사의 층위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 중심에 디오니소스의 무대가 있다. 머리 위 파르테논의 완벽한 비례미가 신을 향한 엄격한 경배였다면, 발치에 놓인 이 극장은 인간의 가장 뜨거운 숨결과 비명이 뒤섞였던 ‘생명력의 현장’이다.


기원전 5세기, 무려 1만 4천 명의 시민이 저 거대한 돌계단에 몸을 붙이고 앉아 비극의 한복판에서 울고 웃는 관객들을 상상해 보라. 경이로운 것은 그들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전란 속에서도 연극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죽음과 파괴가 일상을 먹어들던 시대, 그들이 이토록 간절히 극장을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들은 피할 수 없는 비극의 현실 앞에서, 예술이라는 구명보트에 올라타고 서로 위로받고 싶지 않았을까.


디오니소스. 그는 포도주와 황홀경의 신인 동시에, 고통을 뚫고 피어나는 부활의 신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화려한 제의와 가면 뒤에서 일상의 질서와 체면을 과감히 벗어던졌다. 그들은 인간 내면 깊숙이 숨어 있었던 욕망과 슬픔을 광장으로 쏟아냈다. 그것은 단순히 술에 취한 광기가 아니라, 억눌린 영혼을 해방하여 삶의 본질과 마주하게 하는 거룩한 카타르시스의 여정이었다.


비극의 아버지 아이스킬로스부터 완성자 소포클레스, 그리고 이단아 에우리피데스까지. 그들이 무대에 올린 수천 편의 서사 중 우리에게 남은 것은 고작 서른두 편뿐이다. 그러나 그 적은 작품 속에서도 신과 인간 사이의 팽팽한 긴장, 복수와 파멸, 그리고 실존을 향한 처절한 질문들은 여전히 서늘하게 살아있다.


특히 『오이디푸스 왕』은 서구 정신사의 원형이자, 우리 각자의 심연을 비추는 거울이다. 정체성을 찾으려는 그의 갈망과 그로 인해 마주하게 된 가혹한 운명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삶의 물음표를 던진다. 프로이드를 통하여 오이디푸스 컴플랙스 신드럼이라는 용어가 생산되었으니 말이다.

관객은 무대 위 주인공의 파멸을 보며 역설적으로 자신의 내면과 화해하고, 다시 살아낼 힘을 얻었을 것이다.


삶이 어찌 비극의 무거운 외투만 걸치고 있으랴. 반세기쯤 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희극(Comedia)이었다. ‘희극의 아버지’ 아리스토파네스는 현실 정치와 사회를 무대 위로 끌어올려 민중의 해학을 이끌어냈다. 하루에 다섯 편씩 상연되던 희극은 비극보다 훨씬 발칙하고 생생했다.

졸음을 쫓기 위해 남성의 상징을 과장되게 흔들며 노골적인 유머를 던지던 그 시절의 풍경은, 현대의 음담패설이 가진 원초적인 생명력을 짐작게 한다. 조선의 탈놀이가 양반의 허세를 조롱했듯, 그리스의 광대들 역시 지배층을 신랄하게 비웃으며 서민들의 맺힌 한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그중에서도 나는 『리시스트라테』를 가장 사랑한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여인들이 ‘잠자리 거부’라는 극단적인 선언을 한다는 이 기발한 발상이 무려 2,400년 전에 잉태되었다니. 만약 아테네의 어느 노을 지는 언덕에서 아리스토파네스를 만난다면, 나는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꼭 물어보고 싶다.

“작가님, 그 엄혹한 시절에 어떻게 그런 발칙하고도 평화로운 상상을 하셨나요? 여인들의 쏟아지는 찬사를 감당하시느라 밤잠은 좀 설치지 않으셨나요?”


인간을 꿰뚫는 통찰과 유머는 시간을 앞서 간다. 비록 지금의 디오니소스 극장은 잡초가 무성하고 훼손된 채 폐허의 쓸쓸함을 머금고 있지만, 이천 오백 년 전의 아테네 국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을 뛰게 한다.


바로 옆 로마 시대의 [헤로데스 아티쿠스 원형극장]은 여전히 살아있는 예술의 심장으로 고동친다. 5천 석의 좌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 사이로, 언젠가 이 무대에 울려 퍼졌을 소프라노 조수미의 눈부신 고음이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들과 현대 한국의 성악가가 한 시공간에서 조우하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예술은 그렇게 시대를 건너뛰며 우리를 위로한다. 훼손된 돌계단 사이로 돋아난 잡초조차도 그 옛날의 환호를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아,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비극으로 시작해 희극으로 웃고, 결국엔 음악으로 완성되는 인생이라는 이름의 대제전. 그 찬란한 축제 한복판을 나는 오늘 순례자의 마음으로 걷고 있다.

축제는 끝났고 배우들은 사라졌지만, 객석 사이를 지나는 지중해의 바람 속에는 여전히 그날의 환호와 눈물이 뒤섞여 흐른다.


이제 나는 이 뜨거운 생명력을 품고 다음 여정인 ‘아고라’로 향한다. 광장의 소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진리를 구했던 소크라테스의 발자국을 따라, 나의 순례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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