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두 거장과 맥주 한잔

by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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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장과 맥주 한잔

— 플젠에서 카프카와 쿤데라를 만나다


체코 플젠의 맥주 공장을 견학하던 날이었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대한 공장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출렁였다.

지하 저장고로 내려가자 끝없이 늘어선 오크통들이 사열하는 병사들처럼 서 있었다. 차갑고 눅눅한 공기 속에서 잘 숙성된 맥주가 유리잔에 넘치도록 담겼다.

황금빛 생맥주를 넘기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시원함 뒤에 이내 쌉쌀한 여운이 남았다. 누군가는 이 맛을 인생의 쓴맛이라 부른다.

알코올 기운이 서서히 퍼지자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꽃처럼 피어났다. 평소 술에 약한 나도 안주를 먼저 집어 들고 천천히 잔을 기울이자 심장이 느리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잔이 비어갈 때에도 내 잔에는 여전히 반쯤의 맥주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체코가 낳은 두 작가, 밀란 쿤데라와 프란츠 카프카로 옮겨갔다.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나는 그들을 만나는 상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들 역시 고장의 특산물인 라거 맥주를 마시며 외로움과 농담을 물처럼 넘겼을 것이다.

나는 프라하의 구석진 뒷골목, 오래된 전통 주점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초조한 불빛만이 무겁게 내려앉은 구석진 테이블.

눈빛만 휑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였다. 그는 맥주잔을 앞에 두고 부풀어 오른 거품만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다.


젊은 시절 읽은 『변신』은 내게 충격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부조리와 부패에 맞서며 독재 정권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대를 살고 있었다. 나 역시 내 앞을 가로막은 보이지 않는 벽을 응시하며, 내 자신의 허약함 앞에서 절규하던 날들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나는 카프카의 분신, 그레고르 잠자의 가정사와 시대적 압력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제야 그 외로운 영혼을 의미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는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떨구었다. 그의 주변 공기는 『성』의 안개처럼 무겁고, 『심판』의 끝없는 복도가 그의 등 뒤에서 울려 나오는 듯했다.


“왜 하필 벌레였나요?”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으로 남아 있을 때 이미 인간답지 못했기 때문이오.”


그 말은 고백처럼 들렸다. 그는 세상을 지나치게 예민하게 감각한 사람이었다. 타인의 시선과 제도의 무게가 살갗과 신경으로 전해지는 고통. 벌레로의 변신은 도망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결과였던 것이다.


그는 잔에 남은 맥주를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여기선 모두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은 각자가 재판을 받는 중이지요.”


웃음과 소음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죄책감과 불안을 숨긴 채 살아간다. 이유 없이 기소된 요제프 K처럼, 우리 역시 설명되지 않는 불안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제도라는 벽에 갇힌 채, 쉽게 탈출하지 못한다.

마흔한 살,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뒷모습이 맥주 거품처럼 덧없어 보였다. 그가 고발한 부조리는 과연 나아지고 있는가.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카프카 이후의 세대이자 그의 영향을 깊이 받은 밀란 쿤데라를 찾아 나섰다.

사람들로 붐비는, 인테리어가 화려한 맥주집. 창가 쪽, 막 사람들이 자리를 뜬 듯한 테이블에 그가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미소 지으며 내게 한잔을 권했다.


“프란츠는 너무 진지했죠.” 내가 슬픈 미소를 보내자, 그가 말했다.

“진지함은 미덕이지만, 생을 견디기엔 위험해요.”


그는 농담에서 사랑과 배신 그리고 수난당했던 정치 같은 무거운 것들을 농담처럼 다뤘다. 가볍게 하지 않으면 인간은 그 무게에 짓눌려 버리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프라하의 봄, 망명, 고향을 잃은 자의 슬픔이 웃음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가벼움이 자유라면 왜 우리는 허무한가. 무거움이 짐이라면 왜 우리는 그것으로 존재를 확인하는가. 그의 질문들은 맥주 거품처럼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카프카와 쿤데라는 같은 도시에서 태어나 같은 맥주를 마시며 같은 역사를 통과했다. 다만 선택이 달랐을 뿐이다. 카프카는 침묵 속에서 자신을 소모했고, 쿤데라는 농담 속에 망명을 숨겼다.


다시 친구들 자리로 돌아와 잔을 들었다. 거품은 가라앉았고 쓴맛은 또렷해졌다. 라거 맥주가 시간이 지나야 제맛을 내듯, 사람과 도시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본연의 맛을 드러낸다.


살아 있다는 것은 견디는 일일까, 아니면 웃어넘기는 일일까. 한 사람은 독신으로 41살에 갔고 농담을 말했던 그는 94( 2023)에 세상을 떴다.

세상의 부조리를 마주하는 시선이 달랐던 두 거장.

우리는 평생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살 것이다. 어떤 날은 벌레가 되어 구석에 숨고, 어떤 날은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허공을 걷듯이.

맥주잔을 비우고 일어설 때, 친구들의 얼굴 위로 ‘라거’라는 글자가 나비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플젠의 시간은 깊어갔고, 쓴맛은 천천히 입안에 남았다.

마치 방금 두 작가가 자리를 뜬 직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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