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포츠담 선언, 해방의 문을 열며
독일 동북부의 보석인 포츠담에는 상수시 궁전과 체칠리엔 호프 궁전이 있다.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관광지이지만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연합군 수뇌들이 모여 패전국 독일의 국토 분할과 일본에 대한 전후 처리를 논의했던 장소이다. 세계사의 운명을 결정지은 '포츠담 회담'이 열린 곳이다.
우리 민족에게 포츠담 선언은 36년 일제 강점기의 사슬을 끊어준 해방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늘 한쪽 문을 열며 다른 쪽엔 그림자를 드리운다. 해방의 기쁨 뒤에 곧바로 찾아온 6.25 전쟁과 분단의 비극. 포츠담 선언은 우리에게 자유의 숨통을 틔워주었지만, 동시에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 분단이라는 독배를 안겨주었다.
숲이 건네는 위로, 몰락한 황제의 뒷모습
베를린을 떠나 남서쪽으로 35km. 버스는 숲이 우거진 일방통행로를 달렸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나무들이 산소 같은 휴식을 건네는 길. 인공의 소음 없이 오직 자연의 숨소리만이 흐르는 이 길에서 독일인들이 가진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엿볼 수 있었다.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체칠리엔 호프 궁전 입구에는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와 체칠리 왕비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귀족 시인처럼 섬세한 인상을 지녔으나 타국에서 망명자로 생을 마쳐야 했던 황제. 그 모습 위로 조선의 고종과 순종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권력의 최정점에서 몰락으로 치달았던 그들의 운명은 나라를 잃어본 민족만이 느낄 수 있는 서늘한 슬픔으로 다가왔다.
비어 있는 의자, 살아있는 역사
궁전 내부는 소박했지만, 그 공기는 무거웠다. 미·영·소 정상이 국토 재편을 두고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던 회담장. 붉은 천이 깔린 원탁 테이블과 세 나라의 국기는 그날의 팽팽한 긴장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의자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지만, 역사는 여전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함께 여정에 나선 강만길 교수는 팔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또렷한 목소리로 우리를 현대사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임시정부의 고독한 투쟁부터 신탁통치의 갈등, 그리고 오늘날 북한을 떠받치고 있는 주변국들의 야욕까지.
"민족 통일에 앞서 문화 통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수의 그 한마디는 정치적 결합보다 더 깊은 곳에서 흐르는 '마음의 합치'가 통일의 본질임을 일깨워주었다. 화려한 상수시 궁전의 분수를 바라보면서도 내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그날의 결정이 만든 분단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자는 죽어서도 말하게 하라” 그것이 역사를 기억하는 남겨진 자의 의무일 것이다.
라이프치히: 음악의 성소에서 통일의 불씨로
라이프치히는 작센주의 상업 중심지이자, 인류의 위대한 유산들이 층층이 쌓인 도시다.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라이프치히 대학과 바흐의 숨결이 서린 성토마스 교회, 그리고 독일 통일의 실질적인 기폭제가 된 니콜라이 교회가 한 곳에 모여 있다.
지성의 요람과 바흐의 영원한 선율
구도심의 좁은 골목을 지나 마주한 라이프치히 대학은 괴테, 니체, 바그너, 슈만을 길러낸 독일 지성의 상징이다. 600년을 이어온 이 거대한 전통은 독일이 왜 교육과 지성으로 일어선 나라인지를 실감케 했다.
이어 발길을 옮긴 성토마스 교회. 음악의 성인 바흐가 27년간 헌신하며 매주 새로운 곡을 써 내려갔던 곳이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앞에 서니, 그가 연주했을 〈토카타와 푸가〉의 웅장한 선율이 성당의 공기를 가로지르는 듯했다. 교회를 나서는 순간까지도 바흐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누비던 그 뜨거운 예술혼이 긴 여운으로 따라붙었다.
니콜라이 교회, 촛불로 장벽을 허물다
오늘의 목적지는 성 니콜라이 교회였다. 1980년대 초, 이곳에서 시작된 열흘간의 평화 기도회는 월요일마다 열리는 정기 집회로 이어졌다. 환경과 인권의 문제를 넘어 체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목소리로 확산되자, 비밀경찰의 감시와 압박은 거세졌다.
1989년 10월 9일, 기도회를 마친 2천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든 것은 총칼이 아니라 작지만 뜨거운 '촛불'과 '비폭력'이라는 신념이었다. 그 작은 움직임이 거대한 해일이 되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우리 시대의 교회를 묻다
니콜라이 교회 앞에서 나는 발길을 멈추고 자문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이어받아 신도 중심으로 거듭나고 사회의 아픔에 응답했던 이곳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네 교회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밤하늘을 붉게 수놓은 십자가 불빛은 화려하지만, 기복신앙에 매몰되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라이프치히 대학이 배출한 위대한 작가와 철학자, 음악가들의 정신.
그 지성과 예술의 힘이 모여 체제의 벽을 허물고 민족을 하나로 묶어냈다.
라이프치히는 나에게 말했다.
진정한 통일은 권력의 협상이 아니라
시민들의 깨어있는 의식과 뜨거운 기도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