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의 기다림
문경의 특산품을 떠올리면 사과와 오미자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특히 시댁으로 가는 산북면에
들어서면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이 있다.
아른아른 피어나는 아지랑속에 실려 오는
사과꽃 향기는 계절의 문턱에서 봄을
조용히 알리고 있다.
마을은 사과꽃으로 환하게 피어나며
서서히 봄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몇 해 전 귀농해 사과 농사를 짓고 계신
아주버님을 도우러 문경에 다녀오면서,
나는 사과나무의 시간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되었다. 사과나무는 묘목을
심는다고 바로 열매를 내주지 않는다.
첫 수확까지 꼬박 4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물을 주고, 가지를 정리하고,
병충해를 막으며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작년에 처음 수확한 사과를 맛보았을 때,
그 맛은 단순히 달고 상큼한 과일의 맛이
아니었다.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시간의 맛이었다.
우리가 쉽게 부러워하는 누군가의 성취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4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과꽃도 자세히 보면 모두 같지 않다.
시나노 골드 사과꽃은 색이 더 진하고 단아하다.
사과의 종류마다 꽃의 색과 크기가 다르듯,
사람도 각자의 속도와 빛깔로 성장한다.
누군가는 빨리 열매를 맺고, 누군가는 늦게 피어난다.
중요한 것은 비교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계절을 믿는 일이다.
꽃이 만개하면 벌들이 찾아와 분주해진다.
꿀벌은 8자 춤을 추며 꽃의 위치와 거리를
동료들에게 알린다. 혼자만 꿀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신호를 나누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혼자 애쓰는 삶보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는 삶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 생각하게 된다.
머지않아 사과꽃은 지고 초록 잎 사이로 작은 열매가
맺힐 것이다.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열매지만 강한
햇빛과 달콤한 비를 맞고 탐스러운 사과가 된다.
당장은 성과가 보이지 않아 불안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는 온다는 것을
사과나무의 노력을 보면서 느낀다.
사과나무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몫의 시간을 견뎌 낼 뿐이다.
문경의 사과밭에서 나는 배웠다.
사과꽃도 사과 종류에 따라 색도 다르고
크기도 좀 다르게 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장에는 지름길이 없고 오늘의 성실함이
내일의 열매를 안겨 줄 것이다.
언젠가는 나만의 사과를 맺을 수 있으리라
믿어 보기로 한다. 그 믿음 하나면 오늘도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