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녹으면 뭐가 될까요?

봄이 오는 소리

by 글나라


"눈이 녹으면 뭐가 되나요?"

이 질문에 대부분은 망설임 없이 물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초등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눈이 녹으면 봄이 돼요."

아이에게 눈은 단순한 눈이 아니라 겨울

그 자체였을 것이다. 눈이 사라지면 계절이

바뀌고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아이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어떤 계산이나 지식이 아니라

아이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단순한 진실을 놓치고

살게 되었을까. 어른이 된 우리는 늘 결과부터 생각한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되고 그 물은 흘러가고,

결국 사라진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몽글몽글한 설렘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아이의 대답에는 변화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을 보는 시선이 놀랍다.


곳곳에 쌓여있던 눈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정말로 봄은 그렇게 오고 있었다.

겨울이 길어질수록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된다.

춥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아직 때가 아니라는 핑계로 집 안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봄은 결코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찾아 오지 않는다.

언 땅을 밟아보고 차가운 바람을 견뎌본 사람만이 봄의 온기를 제대로 느낀다.


변화는 늘 불편함을 동반한다. 성장도 마찬가지다.

따뜻한 이불의 유혹을 박차고 나와야 새로운 계절을 만날 수 있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은 땅속에 묻혀있는 씨앗의 잠을 깨운다.

씨앗은 누군가 보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깨어난다.


언땅이 서서히 풀리고 흙의 가슴이 따뜻해져야 한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마음이 얼어 있으면

온전한 봄을 느낄 수 없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온도를 살피는 것이 봄을 맞이하는 중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봄을 맞이하는 일은 계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일인지도 모른다.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정호승 시인이 말했듯이 꽃은 기다림 속에서 피어난다.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성급함을 내려놓고 마음의 온도가 따뜻해질 때까지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 조급함을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는 끝내 피어나는 자신을 보지 못한다.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부족함을 탓하며 자신을 몰아세우는 태도는 오히려 성장을 늦춘다.

스스로에게 조금 느슨해지고, 실수에 관대해지고,

아직 피지 않은 나를 믿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마음의 겨울이 풀릴 때, 삶은 자연스럽게 다음 계절로 넘어간다.


아직 골짜기에는 눈이 남아 있다.

완전히 녹지 않은 마음도, 끝내지 못한 일도 있다.

중요한 건 눈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미 눈이 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변화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봄의 문턱에 서 있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되기도 하고, 봄이 되기도 한다.

지금 내 삶에서 녹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나는 어떤 계절로 향하고 있는가.

어린아이의 시선처럼, 끝보다 시작을 바라보며

조용히 봄마중을 나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