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보면 가장 생각나는 사람

by 글나라

아침에 출근하면서 남편은 아버지 산소에 가서 인사드리고 간다고 한다.

오늘이 친정아버지 기일인데 제사는 모시지 않고 산소에 가서 뵙고 오기로 했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술'이다.


아버지는 화초를 좋아하고,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셨다.

농한기인 겨울이면 동네 친구분들이 방 한가득 모이셨고, 거의 대부분이 아버지가 구성진 입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가시는 게 문틈 사이로 엿들을 수 있었다.


동네에서도 모두가 꺼려하는 궂은일에 항상 팔 걷고 나서서 해결하시곤 했다.

그런 아버지를 동네 사람들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여'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칭찬하셨다.


나한테도 큰소리 한번 안 내시고 이름 부르기도 아깝다고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아가,아가'라고 불러 주셨던 정이 넘치게 많으신 아버지였다.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아버지였지만,

그 누구도 못 말리는 '술'이 문제가 되었었다.


농사일도 정말 잘하셨는데 술만 드시면 그때부터는 하던 일을 다 멈춰버려서 엄마의 애간장을 많이도 태우셨다.

술도 적당히 마시는 게 아니라 거의 말술을 드시니까 농번기에 엄마는 일손이 모자라 많이 힘들어하셨다.


어렸을 때는 술 냄새나는 아버지가 싫었고,

그럴수록 나는 엄마 곁을 더 파고들었었다.

아버지의 술 때문에 힘드셨던 엄마의 소원은

'술 안 마시는 사위'를 보는 거였다.

다행히 엄마가 바라는 대로 술을 전혀 못 마시는 큰 사위(형부)를 보셨다.

하지만, 둘째 사위(남편)는 아버지 못지않은

애주가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매우 흡족해하셨을 텐데...


아버지를 생각하면 '술'이 떠오르고,

또 '섬 묘지' 시를 보면 넘치게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섬 묘지 -이생진-

살아서 무더웠던 사람

죽어서 시원하라고

산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두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아버지 기일에 섬 묘지 시구절을 읊어 본다.


거기 높은 곳에도 술은 있겠지요

그럴 줄 알고 섬 꼭대기에 모시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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