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한 포기가 가장 하고 싶은 말

by 글나라

어제는 아침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고,

다시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이럴 때일수록 움츠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산행을 나선다.


마지막 잎새마저 다 떨군 채 쓸쓸하게 서 있는

나무들의 행렬이 보여주는 공간의 미가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나무와 같은 식물들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나무들도 뿌리를 통해 서로 화학적 소통을 하는데, 서로의 상태를 주고받으면서 경고신호를 전달하기도 한다는 거다.


산행을 하다가 발견한 풀의 머리를 땋아 놓은 듯한 풍경에 발을 멈추게 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거다.

'손재주 좋은 사람이 풀의 머리를 예쁘게 땋아 주었네'라고 감탄할 수도 있다.

나도 초등학교 때 뒷산으로 가위랑 빗을 들고 가서 길게 자란 풀들을 잘라주기도 하고,

머리를 땋아 주기도 하면서 미용실 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 풍경을 보고 그때 추억이 떠올라 정겨움을 느꼈다.


하지만, 남편의 반응은 의외였다.

이름 없는 풀이라도 다 생명이 있고, 자유롭게 커야 되는데 이렇게 숨도 못 쉬게 꽉 꽉 묶어 놨다고 언성이 높아진다.

그러고는 바로 달려가 땋아진 풀을 한가닥 한가닥씩 풀어 주면서 이야기한다.

말도 못 하는 풀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겠냐고!


이렇게 똑같은 풀을 보고도 느끼는 관점이 다른 것 같다.

풀의 머리를 땋아 준 사람은 '길고 밋밋한 풀에게 예쁘게 치장을 해 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먼저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감정을 느끼는 식물에게 인위적인 치장은 어쩌면 인간의 욕심일 뿐이지 결코

식물은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뒤늦은

반성을 하게 된다.


나무에 기생하며 자라는 이름 모를 버섯을 보게

된다. 자연의 생체리듬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롭게 느껴진다.


지난번 폭설의 무게에 못 이겨 부러진 소나무의 잔재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땔감으로

쓰이기도 할 것이다.


죽은 나무를 베고 남은 그루터기의 단면에 나타난 나이테가 보여주는 흔적도 자연의

생태리듬인 것이다.


초록잎 잃은 겨울산의 휑한 모습이지만

흔들리는 바람에 몸을 맡기면서 느리게 봄을 준비하고 있노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젠, 길고 느린 겨울잠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 머지않아 곧 초록 잎 넘실대는 예쁜 봄을 선물해 줄 것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봐주고,

기다리고 지켜봐 주는 것!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