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고작 두 시간
지지난 금요일.
오후 1시가 좀 넘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좋지 않다는.
아빠가 좋지 않다는 전화를 벌써 여럿차례 받아 온 나는 그날도 그런 전화 중 하나였다.
처음으로 아빠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만큼 당황하지 않았고 조금 덤덤하고 조금 떨린.
그렇게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집으로 갔다.
아이들의 하교 시간까지 짐을 싸고, 하교 시간에 맞춰 두 아이를 픽업했다.
출발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첫째는 놔두고 온나..."
첫째를 놔두고 올 정도면 또 그리 위독하지 않다는 뜻인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갔다.
이번 주에는 혼자 포항을 갈 생각이었기에.
매주 나오던 남동생도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
울릉도에서 배를 타고 포항으로 오려면 매주 회사에 조퇴 신청을 해야 하기에.
그렇게 나는 식구들을 두고 혼자,
동생은 아빠가 위독해서 병원에 입원 한 뒤 처음으로 나오지 않은 금요일.
그다음 날 새벽, 아빠는 우리에게 이별을 고했다.
엄마와 나, 그리고 아빠.
이렇게 셋이서 아빠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했다.
잠이 든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들 목소리, 아빠 아빠 부르는 딸 목소리, 울고 있는 아내 목소리.
그 목소리가 들리시는지 감은 눈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나는 아빠의 마지막 눈물을 닦아주었다.
지지난주 금요일.
' 어.. 왔나... ' 이후로 긴 대화를 하지 못했다.
눈 조금 마주치고 화장실 다녀오고,
밥 맛이 없었는데 극구 먹으라고 챙겨주는 엄마를 말리지 못하고
밥을 먹었다. 아빠 옆에서 꾸역꾸역.
그 시간에 말이나 더 해볼걸.
많이 아프냐고 의식이 있을 때 손을 더 잡아 드릴걸.
그렇게 못 일어나실 줄 몰랐다.
아빠가 너무 고통스러워했고
모르핀을 맞지 않으시면 잠들지 못하셨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을 아픈 채로 견디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빠에게 좋지 않은 약이 들어가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빠는 고통 없이 잠든 채로 그렇게 우리와 이별했다.
고작 두 시간.
맥박과 호흡이 떨어지고 두 시간.
두 시간이 전부였다.
폐암 수술 후, 악성폐렴으로 중환자실에서 기적처럼 살아 나온 아빠는
이 년을 누워 투병하시다가 두 달 병원 생활 후, 두 시간 만에 생을 마감하셨다.
아빠는 두 달 입원 기간 중 두 번 임종실을 가셨다.
처음 임종실에서 모든 말씀을 다하셨고, 보고 싶은 식구들을 다 보셨다.
그래서 아빠는 조용히 돌아가시길 원하셨다.
원하시는 데로 아주 조용히 주무시는 가운데 아주 고요한 새벽에.
" 잠 재미있었다. 내 참 재미있었다. "
아빠는 사셨던 날들이 재미있었다며 병실에서 종종 눈물을 보이셨다.
아빠 덕분에 나도 재미있었다며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 덕분에 함께했던 내 인생도 참 재미있었어.
엄마랑도 더 재미있게 살다가 엄마 먼저 아빠 곁에 보내줄게.
엄마가 아빠에게 딸내미가 참 재미있게 해 줬다고 말할 수 있게 노력해 볼게.
정말 고마워, 나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줘서.
그리고 사랑해 아빠.
아빠의 유품으로 노트북을 받아왔다.
나는 이 노트북으로 글을 쓸 생각이다.
매일 새벽 아빠와 만날 작정이다.
그 첫 글은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