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둥이 엄마.
스레드에서 아들 둘 키운 엄마가 마흔에 늦둥이 둘째를 낳았다는 피드를 보았다.
둘째와 터울이 아홉 살인 그러니까 첫째와의 터울은 더 있는 것이다. 고물고물 한 작은 아이가 큰 오빠와 함께 있는 사진을 올렸는데 사랑스러웠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두 명의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이런 글을 쓰는 건 너무 건방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들었다. 고작 아이를 두 명만 낳은 주제에 다둥이 엄마라고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글을 쓴다고?!
둘 낳은 주제라도 아이 둘을 키우는 기쁨과 행복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한 시절을 우린 살고 있다. 비혼도 많아지고, 결혼을 했다고 해도 무자녀를 계획하는 부부도 많다. 지금 일하고 있는 사무실 30대 직원 중에도 비혼과 무자녀를 계획한 사람이 있다. 고작 12명의 직원이 전부인데, 한 사람은 동거는 하고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아이를 낳고 기를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자녀가 둘 있는 직원은 나 포함 6명이나 된다. 대신 이들은 모두 40대를 넘겼다. 30대 이하엔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막연한 상상의 고통에 자신들을 밀어 넣기 싫은 것이다. 육아는 힘들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보고 살고 있지 않은가.
'와! 정말 저 정도야? 나는 절대 못하겠다.'
그렇다. SNS에 보이는 우와 정말 저 정도로 힘든 육아도 분명 있다. 그렇나 그 뒤편에 자라고 있는 감정까지는 모르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같이 자라고 있는 뽀송뽀송한 이 감정을 모르는 것이다. 그 기쁨을 알고 있는 사람은 둘을 낳고, 또 셋을 낳고 넷을 낳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엔 힘든 고통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개구쟁이 둘을 하루 종일 돌 보고 난 뒤, 그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 주는 그 고요의 행복을 키우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때론 환자로, 선생님으로, 공주로 변화가 가능한 배우가 되어야 하고, 때론 미술학원 선생님이, 프로게이머 되어야 하는. 나의 숨겨진 재능까지 다 끌어올리게 해주는 육아야 말로 나의 능력치를 발견하고 키울 수 있는 인생 최고의 작업이 된다. 육아를 하지 않았다며 나는 내가 그림에 소질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힘들 날엔 달려와서 안아주는 아이의 숨결이 사라진 기운을 채워준다. 털어놓기 힘든 고민들로 잠들지 못하는 날은 잠자는 아이의 숨소리가 자장가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 뽀송뽀송한 감정을 육아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감정들이 쌓고 쌓이다 보면, 하나였던 아이가 둘이 되고, 셋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더 나은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고작 둘로 보잘것없지만, 아이가 없거나 하나인 것보다는 많은 것이 아닌가. 기혼자들 중에 자식 둘이 제일 많은 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둥이라고 나라에서 정해준 시대가 아닌가.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둥이 엄마다. 다둥이 엄마가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긍정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사랑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나도 다둥이 엄마다.
금요일 연재.
초보작가의 초보가 아닌 초보육아일기.
아이 둘은 처음이라.
두근두근, 구르뮈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