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그의 이야기
또 시작되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잊었다.
그녀는 길모퉁이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
마냥 기다려야 했다,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이런 생활이 고달파 몇 번이고 삶을 멈추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재수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매번 삶이 이어졌다.
'정말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기억을 읽은 날은 꼭 짐승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러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될까 매일 두려웠다.
그는 오늘도 그녀를 따라갔다.
'길모퉁이에 앉아있는 걸 보니, 또 어디로 가는지를 잊어버렸구나...'
그는 기억을 잃는 일이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 말하는 그녀를 보는 게 힘겹다.
아픈 건 잘못이 아닌데...
뭔가를 잘못해서 아픈 것이 아닌데,
그녀는 아픈 자신을 자책으로 더 아프게 한다.
그런 그녀의 곁에서,
그는 자신도 망가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녀 곁에 있으려고만 한다.
아니, 꼭 그녀의 곁에 있고 싶다.
그는 자신이 망가져도 아무렇지 않다.
힘들어도 곁에서 힘들고 싶다.
그녀는 그다.
허나, 그런 그녀가 자꾸만 멀어지려 한다.
그는 그녀의 손 끝, 발 끝…
어느 작은 한 끝이라도 좋으니 부여잡고서라도, 곁에 있고 싶다.
'나는 너와는 다른 극이야. 그래서 나는 너의 그 끝에 딱 붙어있어야 해.'
밀어내고 싶다.
그녀는 그를 멀리 밀어내고 싶다.
그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애써 웃고 있지만, 너도 나랑 같이 울고 있잖아..'
멀리 있는 그가 또 웃는 연습을 한다.
옅은 미소를 담는 그 얼굴, 그 눈동자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그 슬픈 눈으로 웃고 있는 그 얼굴이, 그녀는 너무너무 애달프다.
그녀는 애써 괜찮은 척하는 그를 보는 마음이 너무 힘겹다.
괜찮지 않은 현실에, 자꾸만 괜찮다 하는 그가,
그녀는 절대 괜찮지 않다.
그는 그녀다.
그녀는 그를 놓아주고 싶다.
자신 같은 그를, 그녀는 놓아주고 싶다.
자꾸만 길을 잃는 자신이 너무나 답답해서, 그는 멀리멀리 가버렸으면 좋겠다.
길을 찾아 막막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그가 정말 보이지 않을까 봐 두렵다.
나와 같아서, 나와 닮아서, 나의 곁에서,
자신도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저렇게 바보같이
그녀만 따라다니는 그를,
그녀는 밀어내고 싶지만... 정말 그러고 싶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또 그를 모른 척한다.
밀어내지만 밀려나지 말았으면, 밀고 밀고 밀어도 밀리지 말았으면.
'너와 나는 같은 극이야. 그러니 저만큼만 밀려나줘. 그렇지만 멀리는 가지 말았으면 좋겠어. 정말 미안해...'
아무렇지 않게 사랑했던 날이 있었던가.
슬픔을 참고 만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었던가.
서로를 애달파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었던가.
예전의 기억이, 그 좋았던 기억이 까마득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사랑이,
사랑의 이름을 한 연민인지
연민의 이름을 한 사랑인지.
그녀와 그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
아니, 사랑을 한다.
매주 수요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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