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연히 언젠가 들었던, 행운의 7이라는 수가 잠시동안 나를 잠식한 적이 있다.
세상에 대한 주체적 해석이 적었을 때,
왜 그것이 행운의 수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많은 곳에서 이야기되는 그 숫자는
딱히 의심해 볼 이유도 없었다.
머리가 아주 약간 굵어져서 행운의 7이 별 의미 없다는 걸 생각하던 중학생 즈음,
외가댁에서 발견한 할머님의 책.
어떤 스님이 썼다는 운명철학 책에서
내 탄생년월을 기준으로 3이라는 숫자를 나에게 제안했고, 또 한동안 그것이 나의 운명의 수였다.
근원도 모르고 믿던 7을 지나, 나름 도통한 스님이 쓴, 할머님이 읽으시던 책이 나에게 준 3이 새로운 계시가 되었다.
나이가 더 들면서, 그 3 이외에 다른 수를 모시는 일은 없었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나는 많은 부분에 기원하는 태도를 섞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도 길바닥의 특정 무늬를 밟지 않는다던지, 횡단보도를 두 칸씩 건넌다던지..
하지만, 내가 대체 무엇에게 기원하는지는 여전히 몰랐고, 기원 행위의 실패는 나에게 실망과 패배감마저 가져왔으며,
성공했을 때도 그 기원이 항상 이루어진 것은 당연히도 아니었다.
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에 와서야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묶고 있음을 느끼고는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몇 번 드러낸 바 있지만, 나는 이제 일종의 운명론자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태도와 지향성에 영향을 받는다고도 믿는다.
나는 여전히 묶여있지만, 나를 묶는 것도 푸는 것도 내 마음에 달려있음을 안다.
그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