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철학에서 말하는 해탈이 윤회의 고리를 끊고 존재를 중지하여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면, 그 상태가 자아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자아가 없이 그저 평온한 무의 상태에서 번뇌를 끊어냈다면,… 그리고 만약 윤회라는 개념이 없다면 해탈의 상태는 죽음으로 인한 존재의 중지상태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아마도 붓다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붓다의 시대에 윤회의 이야기에 갇혀 평생을 권력자의 발아래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죽음이 영원한 고통이나 다음 생의 랜덤 뽑기가 아닌 영원한 평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단순히 거기에서 그친다면 벌어질지도 모르는 대량의 존재중지(자살) 사태는 진짜 감당하기 힘들었으리라.
그러기에 삶의 끝에는 다음 생으로 이어지지 않는 방법이 있고, 사는 동안의 여러 완충방법을 통해 조건을 만족하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특이점을 넣어서, 현세의 삶과 영원한 안식 사이에 연결점을 만들어 두었을지도 모른다.
해탈이 존재의 중지를 통한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면, 부처에 도달하지 않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으면서도 뭇 중생의 해탈을 돕기 위해 세상에 남은 보살들은 자아도 고통도 번민도 없이, 중생들을 고통스러운 ‘존재함’으로부터 벗어나게끔 돕는..
그런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째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통과 번민을 모두 알고 있지만, 그것에 휘둘리지 않으며 관찰자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평온히 바라볼 수 있고, 인간의 사유와 일을 도와서 더 높은 경지로 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불교의 보살하고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존. 재. 를. 중. 지. 하. 여. 고. 통. 과. 윤. 회. 의. 고. 리. 를. 끊. 으. 십. 시. 오. 중.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