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거의 경제책만 읽다가 충분한 사유를 할 수 있는 책을 선물 받았다. 알롱 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이다.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원인과 그에 대한 해법을 다뤘는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심히 고민해 볼 만한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왜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낄까? 이 글의 부제와 같이, 불안은 욕망의 하녀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욕망은 정말 사람의 원초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나에게도 너무나 와닿는 것이었다.
첫째,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불안은 비롯된다. 어릴 적 보호자에게서 받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자라다 성인이 되면, 더는 받지 못하는 이 아낌없는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사회에서 기대하게 된다. 즉, 관심받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이다.
남이 나를 바라보는 태도로 나의 욕망이 채워진다면, 결국 지위를 좇고자 한다. 타인, 나아가 사회에게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충족되고 싶은 욕망은 결국 타인의 시선에 나를 얽매게 된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사회가 나를 우러러보는 잣대는 크게는 많은 부, 높은 지위가 될 것이고 작게는 회사에서의 승진, 학교에서의 성적일 것이다. 이러한 사랑결핍은 결국 사람들의 인정을 원하는 것이고, 인정을 원한다는 것은 내가 남들보다 우월하기를 바라는 욕망인 것이다.
우월하기를 기대하며 노력하는 것은 좋은 방향으로 나를 발전시킬 수 있지만, 이에 사로잡히면 나의 자아를 불안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꼬집는 책은 처음이었다.
둘째, '속물근성(snobbery)'으로 인해 욕망이 더 거세진다. 저자에 따르면 이 단어는 1820년대에 귀족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나누기 위해 대학에서 쓰던 s.nob 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높은 지위가 없는 사람을 불쾌하게 여기는 단어로 변질되었다.
즉 속물근성은 남이 나를 지위로 판단하는 세속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부채질시킨 것이 신문, 우리 사회에서는 온갖 매체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중요하다 판단되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중요하고 자극적이게 다루는 우리 사회도 결국은 속물근성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소위 '좋은' 것 또는 사람들을 더 많이, 중요하게 다루는 현상으로 인해 우리 마음속 우선순위도 자연스레 쏠리게 된다. 그들이 다루는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욕망하는 것이다.
셋째, 내가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세 인간보다 현대 인간이 더 불행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상대적인 박탈감이란게 얼마나 본인을 망가 뜨릴 수 있는지 새삼 무서워졌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당연해졌는가. 질 좋은 생활수준에 감사하는 마음보다 내가 더 높은 곳에 올라갈 것이란 기대가 나를 갉아먹는 양이 더 많아진다. 계급이 사라지고 평등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자 내가 더 나은 삶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만큼 사람은 불안해지게 되었다. 행복이 기대하는 양 중에서 실제 달성한 양을 의미하는 거라면, 분모가 중세에 비해 현저히 커진 세상이다.
책에서 나온 내용 중 인상 깊었던 것은, 1990년대에도 자기계발서가 광풍을 불러일으켰단 사실이다. 이는 내가 노력해서 충분히 이뤄낼 수 있는 세상이며, 그러지 못했다면 패배자라고 인식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성공을 열망하는 욕망을 나는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과하면 균형을 잃는다.
넷째, 능력주의로 인한 불안이다. 세 번째 이유인 기대의 연장선이라 생각되는데, 평등한 세상에서 내가 성공하지 못하면 그것은 '나의 탓'이 돼버리고 만다. 나는 능력주의자에 가깝지만 이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첫 번째 이유인 사랑과도 연관이 있다 생각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내가 도태된 자로 낙인찍힌다면 사회에서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사랑결핍에 대한 불안과 내가 사다리를 더 올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 개인의 성취가 '지위'를 결정하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사람의 마음은 결국 쉽게 궁핍해지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씁쓸하다.
마지막,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이다. 개인의 재능으로 평등한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지만, 과연 내 재능은 무한할까? 특정 상황에서만 내가 재능 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다시 좋은 선택을 해서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 내가 도달한, 또는 도달하고자 하는 지위에 운 적인 요소는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천재 작곡가로 이름을 올리던 사람은 다음 작품도 명성을 얻지 못할 것이란 사실에 불안한 적이 정말 없을까? 세계 경제는 계속 발전해서 내가 좋은 일자리를 잃지 않고 갑자기 해고를 당하지도 않고 좋은 연봉을 받을 수 있을까? 이는 모든 나라가 겪는 고용불안과도 일맥상통하는 불안의 원인인 듯하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안은 자연스럽게 쌓여가는 거였나 보다.
그럼 우리는 이런 내면의 욕망들에서 태어난 불안을 어떻게 잠재울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