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왼 손발을 못쓸 때

by 글루

3월 말 발목골절에 이어 며칠 전엔 손가락이 골절됐다. 왼 발목이 다 낫기 전이라 아직도 목발을 짚는데 이젠 그것마저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넷째 손가락은 불의의, 타인에 의한 사고로 손톱과 함께 박살이 나버려 어제까지도 아예 왼손을 사용할 수 없었다. 오늘은 그래도 주변이 건드려진다고 손가락에 말 못 할 통증이 오는 건 줄었다. 덕분에 휴대폰으로라도 글을 쓴다.


왼발 왼손을 다 못쓰니 다시 일상에 대해 복기하게 된다. 개중 재밌는 사실을 하나 상기했는데 바로 사람은 걸을 때 손을 쓴다는 거다. 목발을 떼고 조금은 걸어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에 용기를 내어 조금씩 걸어보고 있다. 그런데 왼손을 수직으로 접어 힘을 줘 고정하지 않으면 계속 손가락이 아픈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해 인지조차 못했던 ‘걷는 메커니즘’이 생소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왜 부모들이 건강만 하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지 알 것만 같다. 나는 크면서 크게 앓아본 적이 없었다. 입원이나 수술도 말이다. 자잘한 병과 현대인의 질병에 노출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아예 손쓸 수도 없이 시간만이 약인 채로 움직임을 절제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발목이 차도를 보일 때 이런 말도 안 되는 골절이 찾아오다니.


지난 2달간 나에게 있었던 ’ 물리적인 ‘ 사고만 나열하면 자의(나의 부주의)-타의-타의-타의 순서다. 압도적으로 나로 인한 사고가 적은 걸 보아하니 내가 회피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고민이 절로 생길 수밖에 없다. 기존에는 내가 대처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고 나를 더 발전시키고자 했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재해들에 대해 생각하는 건 생산적이지 않아 보였다.


주식에서 분산투자를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가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위험을 분산시키고자 함이다. 내게 일어나는 예측불가할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걱정인형으로 살겠다는 것 말고 더 본질적으로 재해를 뿌리 뽑을 수는 없을까?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없다”다. 내게 닥쳐올 삼재와 같은 -심지어 아홉수가 올 나이도 아니다- 일에 대해서 미리 알고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은 도무지 보이지 않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걸 생각하기보다 다른 내가 필요한 일들에 시간을 쏟고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칠까란 억울함도 삼키고, 불편한 몸에 대해 세상이 주는 불친절을 경험하고, 이 시기의 고통을 잊지 말고 감사히 살자. 나의 불행이 남의 행복의 발판이 되게끔 두지도 말고, 다만 내 자신의 행복을 더 그러잡을 수 있도록 그렇게 다독이자.


그렇다면 분명,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