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약을 먹는 자, 제정신의 무게를 견뎌라
ADHD 치료제인 콘서타 54mg이 헐거운 내 나사를 조여주고 있다는 건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가끔은 다시 나사 빠진 나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이건 내가 이렇게 경솔히 내뱉는다 한들 정말 그렇게 되진 않으리란 것을 알기에 하는 소리지만. 어쨌든 뇌의 문제로 깨어도 진정 깨어있는 것이 아니었던 지나온 삶을 약을 통해 비로소 획득한 '제정신'으로 돌이킬 때의 당혹감이란,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ADHD를 진단받고 서글픈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떠한 이유로 조금 기대가 되거나 안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는 어떠했냐 하면, 삶의 무게가 덜어진 것 같았다. 성인 되고 치료 시작하면 완치도 불가능하다는 병을 진단받고 느낀 점이라기엔 다소 엉뚱하지만, 아무렴 나는 그랬다. 내가 4년을 견뎌온 조울증의 무게보다는 어쩐지 가볍게 느껴졌기에. 내 진단명은 올여름을 기점으로 양극성장애 2형에서 ADHD로 교체됐다. 조울증인 줄 알았으나 조울증이 아니었다는 기막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미루고, 지나온 내 삶에 천방지축 얼렁뚱땅 빙글빙글 돌아가는 하루하루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러고 보니 좀 칠칠맞긴 하지 싶었다. 내가 좀 잘 까먹고, 할 일을 많이 미루긴 하지 싶었다.
그리고 지금, 2023년 11월 27일 새벽 2시 43분의 나는 무지막지한 현타로 잠 잘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나는 치과를 무서워한다. 치과 가는 상상만 해도 등골에 식은땀이 흐를 것 같다. ADHD 약을 복용한 이래로 떠올리는 내 과거도 꼭 그만큼이나 오싹하다.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싶다. 심리상담사 선생님께 줌으로 수업 듣다가 졸려서 끄고 잤다는 얘기를 했을 때 선생님 얼굴 위로 얼핏 스친 당혹감이 이제야 이해된다.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살지 않을 거다. 지금 다시 돌아가면 도저히 그렇게 살 수 없다. 그런데 이미 그렇게 살아버렸고, 되돌릴 수 없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달라'는 기도문을 나는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꿀 수 없는 것'에 꽂혀 가슴이 저미는 순간이 있다. 28살 무경력 대졸 백수라고 하면 대개는 시험 준비를 오래 했겠거니 한다. 그러나 나는 시험 준비를 한 적이 없다. 조금 더 낱낱이 밝히자면, 회계사 시험 자격 요건을 갖추겠다고 독학사 시험을 몇 과목 보기는 했다. 그리고 컴활과 토익을 비롯한 자격증 몇 가지를 취득했다. 공기업을 가겠다고 NCS 책을 사서 진단고사를 11문제인가 풀었다. 그냥 그게 다다. 공무원 시험은 시험 과목도 제대로 모른다. 이력서의 경력 칸을 통으로 비운 채로 입사지원을 하면서도, 혹여나 나를 면접에 부른다면 가서 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벌벌 떤다.
도합 5년 가까이 되는 공백기 동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보냈다. 그 외의 생산적인 성과라곤 독학사, 자격증, NCS 11문제가 다다. 취득한 자격증 중에 그나마 의미 있는 건 컴활 1급과 전산세무 2급이다. 알바도 인턴도 동아리도 기타 대외활동도 아무것도 안 했다. 이렇게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그렇게 보낼 수 있는지 의아해하겠으나, 이렇게 살아본 사람은 분명 알 것이다. 무기력한 사람의 시간은 속절없이 빠르게 흐른다. 무기력을 떨치고 돌아보면 소름이 끼칠 만큼.
약을 먹고 나서야 부끄러움을 알았다. 약 먹기 전이라고 해서 내 머리가 꽃밭이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때의 내겐 만성화된 수치심과 우울감이 자리하고 있었을 뿐 궤도를 한참 이탈해 실시간으로 도태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자각이나 위기의식 같은 게 없었다. 그냥 무작정 우울했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게 힘들었다. 미래도 계획도 없었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그렇게들 부지런히 아등바등 현명하게 살아내는지를 엿볼 겨를도 없었다. 누군가는 큰 시험에 합격할 그 긴 시간을, 또 누군가는 한계를 인정하고 단념할 그 시간을, 나는 성공도 실패도 없이 보냈다. 그게 사무치게 후회스럽다. 실패조차 없었다는 것이.
어찌 됐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냥 앞으로라도 제대로 사는 것뿐이다. 너무 늦지는 않았으리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조금씩 천천히 만회하는 수밖에 없다. 혹여 충분히 만회하기도 전에 야속하게 삶이 끝난다고 한들, 별 수 없다. 발걸음이 채 찍히지 않더라도 한 걸음 더 내딛는 게 중요할 테니까. 자고 일어나 맞이할 새 하루 동안은 조금 덜 속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