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마의식

다시 쓰는 마음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by 구마


한동안 내게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조차 잊고 산 것 같다. 마지막 글을 쓰고 나서 새 직장을 얻었고, 어느새 해가 넘어갔다. 세는나이로 서른이 됐다. 이토록 싱겁고 흐리멍덩한 서른이라니. 몇 해 전의 나는 내가 서른을 맞지 못하고 죽어 사라질 것을 무모하게 확신했었는데.


반년 동안 이 공간을 찾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 몇 안 되는 글이나마 쌓이고 나니 희미하게 이 공간의 정체성 같은 것들이 내게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거기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마 처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엔 내가 성인 ADHD 환자라는 것이 내 정체성에서 퍽 비중이 있었나 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건 예기치 못하게 작아져갔다.


느끼고 생각하고 풀어내고 싶은 것들이 ADHD니 정신병이니 하는 것들을 한참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면 그런 여집합의 주제들을 여기 써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뭐든 정확하고 싶었다. 답이 있기를, 내가 그에 다다르기를. 그런데 세상엔 내가 답을 쥐고 있는 물음들도 있는 법인데, 그에 대해선 지나치게 무심했다.


그냥 이제 여기에 아무 거나 쓰기로 했다. 쓰고 싶으면 쓰기로. 내가 그동안 써온 글들의 제목조차 다시 보기 힘들 만큼 내 글과 내 고백들이 너무 창피해졌지만, 그걸 애써 극복하려 하지는 않겠다. 창피하면 다시 안 읽으면 그만...


그리고 다시 쓰고 싶어진 마음을 솔직히 인정하기로 한다. 여전히 혹시 누가 내 글을 보고 나를 알아볼까 두렵지만, 불특정다수에 공개되도록 내 글을 던져놓는 이 공간이 엄연히 내 숨통을 틔워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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