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마의식

스물아홉 문득

온 만큼을 더 가면, 난 거의 예순 살

by 구마


어느 날 갑자기 뒤를 돌아봤어
글쎄 난 또 이렇게 멀리 왔네
예전엔 뛰었었지, 아주 빠르게
지금은 난 더 빨리 걸을 수 있어

첫 MT때 춤추던 너
시간은 아무런 말없이
지금도 쏜살같이 가네
거짓말처럼

온 만큼을 더 가면
음 난 거의 예순 살
음 하지만 난 좋아
알 것 같아
난 말해주고 싶어, 나에게
그동안 너 수고했다고

졸업식 땐 군대 가고 없었지
목욕탕 가는 게 이젠 안 창피해
하지만 난 그게 슬프기도 해
수많은 바람이 불어오고 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가고

시간은 아무런 말없이
지금도 쏜살같이 가네
거짓말처럼

온 만큼을 더 가면
음 난 거의 예순 살
음 하지만 난 좋아
알 것 같아
난 말해주고 싶어, 나에게
다음 달에 여행 가자고



연나이로 열여섯에 들은 노래를 지금까지 듣고 있으니까, 난 이 노래를 13년이나 들은 셈이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스물아홉 문득'. 그땐 '난 이런 성숙한 노래도 들어'라는 사춘기 특유 치기 어린 우쭐함으로 들었고, 지금은 그냥 덤덤히 듣는다. 스물아홉에 듣는다고 별스럽게 찡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어쩌면 언젠가부터 어떤 것도 별스럽게 찡하지가 않다.


스물아홉에 이르러 느끼는 별스러운 소회도, 사실 없다. 여전히 한국식 나이가 익숙해 내 심리적 나이는 사실 서른인데, 서른에 대한 느낌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럼 나는 왜 이 글을 쓰나. 목요일 오후 8시에, 다 가고 없는 사무실에서, 딱히 쓸 말도 없으면서.


그러니까 스물아홉이건 스물아홉 문득이건 다 핑계다. 난 그냥 외로운 거다. 외로움을 견디기엔 잠깐 더 나약해진 거다. 그러니 괜찮은 척을 하기 위해서건 괜찮아지기 위해서건 타자를 두드리게 되는 거다. 두드리다 쓸 말이 생기길 바라면서. 자판에 손을 올려두고, 멍하니 내려앉은 손이 머쓱해지는, 약간 구질구질한 기분을 견디면서.


이렇게 살다 죽는 건가. 라는 생각이 요즘 든다. 언젠가부터 든다. 이 말이 무서운 말인 줄, 이게 이렇게 무서운 느낌인 줄,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난 몰랐던 것 같은데. 이젠 아는 사람이 됐다. 쓸 말도 없이 자판에 손을 올리고, 정형외과 의사들이 싫어할 것 같은 구부정한 자세로, 시간 죽이듯 숨마저 힘없이 쉬는 그런 순간들이 모여 모여도, 삶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간다는 걸.


방심하며 살다 한 순간 또 눈을 뜨면 저만치 훌쩍 나이를 먹어버린 뒤일 것 같은. 그맘때면 또 지금은 상상도 못 하고 있을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한참 알아버리고 말 것만 같은. 그런 불길한 직감 가운데서도 아직은 그런 때가 오지 않았음을 비열하게 기뻐해야 하는. 이런 서른. 이게 서른. 아니 스물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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