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남긴 자리나 표시
애초에 나랑 배달음식은 친하지 않았다. 자취를 하기 전에도 집에서 시켜먹는 건 언제나 탕수육 정도. 보통은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배달음식과 가까워질 틈이 없었다. 어디선가 한 달에 시키는 배달 횟수를 체크해보라고 했을 때 한 달에 한 번도 시키지 않는다고 하니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우리나라의 배달의 민족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나랑은 먼 얘기였다.
독립을 하고 일주일쯤 됐을까. 배달용기를 처리하는 것도, 누군가 우리집 앞에 음식을 놓고 가는 것도 싫었다. 아무래도 찝찝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문을 열어서 음식을 받거나 음식을 안에 넣어줬는데, 간혹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배달기사의 찝찝한 시선이 계속 떠올랐다. 본가에 있을 때도 남자가족이 음식을 받거나 전화를 도맡아했다. 그런 환경이 나에게 익숙해서 포장을 해오는 게 일상이었다.
포장도 한 두 번이지.. 배달 용기 처리는 똑같았다. 2인분부터 포장되는 곳도 많았기에 남기는 음식도 있었고, 그냥 모든 게 다 쓰레기였다. 나의 기분까지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귀찮았다. 집에 가는 길에 들리는 것조차 귀찮아지는 시기가 왔다. 말그대로 큰일이었다.
그래서 요리를 시작했다. 비교적 쉬운 김치볶음밥부터, 그냥 고기를 구워 먹거나 스팸, 계란을 풀어서 소세지와 함께 구워보기도 했다. 반찬가게에 가서 각종 찌개와 반찬을 샀지만, 또 어느 순간 귀찮아졌다. 아마 귀찮아지기 시작한 건 날씨가 풀리면서일 것이다. 요리하면서 올라오는 열기가 나의 얼굴쪽으로 향하면, 안 그래도 열이 많은 몸에 열이 플러스가 됐다.
그렇게 악순환이 시작됐다. 배달.. 나는 다시 배달의 민족 어플을 깔고 말았다. 오랜만에 로그인한 것도 아니었다.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다시 배달로 돌아온 것이다. 한 달에 5번만 시켜도 VIP가 되는 시스템은 아마 많은 자취생들에게 유혹이 되지 않았을까. 다시 돌아가지 않게 어플에 저장해둔 카드 정보를 지울까 고민도 했었다. 결국은 그대로 유지 중이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혹시 모를 일이란 숙취를 위한 해장음식을 시킬 때가 1순위다. 요즘에는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아서 (정말?) 해장을 할 필요가 없지만 (진짜로?) 가끔 잔뜩 마실 때가 있다. 살짝 지칠 때. 요즘이라면 더위에 지쳐서. 상쾌환을 미리 먹긴 하지만, 간혹 술기운이 올라서 섞어 마시는 날은 각오해야 한다. 다음날 숙취로 고생할 거라는 걸. 그리고 고생하면서도 손가락은 배민 어플을 통해 수박주스를 시키겠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배달음식이 질린 상태다. 벨을 누르고 얼마 뒤 나가서 가져오는 나의 음식. 최근에 자주 먹었던 건 냉면과 갈비. 물론 첫 입은 맛있다. 근데 먹다보면 배달음식 특유의 맛이 있다. 나도 모르고 싶었지만.. 자취생은 그런 것도 알아야 하는 숙명이 있다. 재밌는 말이 있는데. '~하면 안 돼. 왜 안 되냐고? 어떻게 알았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알게 됐지.
아직도 나의 배경화면 저 어딘가에 숨어있는 배달 어플. 난 당분간 배달음식을 먹지 않을 거지만, 그 '당분간'이 지나면 널 다시 찾겠지. 우리가 함께 했던 정이 있으니까 삭제하진 않을게. 어차피 다시 설치해야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