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남긴 자리나 표시
장마가 시작됐다. 매년 내리는 비임에도 불구하고 장마가 시작되면 초면 같다. 분명 작년에도 장마가 있었잖아? 근데 장마가 처음인 것처럼 행동하는 나를 발견한다. 어색하게 우산을 펼치고, 서툴게 우산을 말리고, 외출 전 신었던 양말을 벗어놓는다. 장마에는 운동화를 신으면 어떻게 되는지 몸으로는 알고 있는 거다.
장마를 맞이해서 빨래 텀을 줄였다. 3, 4일에 한 번씩 하던 빨래를 거의 일주일을 채워서 했다. 습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마르는 속도가 한참 늘어났다. 에어컨도 켜보고, 선풍기도 켜봤지만 똑같았다. (체감상) 이래서 베란다가 있는 집이 좋다. 베란다는 그래도 창문을 열어놓으면 잘 마를 텐데. 내 집은 창문을 열어놔도 똑같다. 다음엔 창문이 더 크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으로 가고 싶다. (아직 1년도 안 됐는데)
그리고 장마가 시작되자 집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후각에 예민하고, 별명 중에 하나가 개코인데, 별로 넓지도 않은 집에서 냄새가 난다? 아주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다. 나름 청소도 자주 하고, 청결을 잘 유지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냄새가 나다니.. 작은 충격을 받았다. 집을 돌아다니며 냄새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돌아다닌다고 표현은 했지만 고작 몇 발자국 정도.
냄새가 날 확률이 높은 화장실? 아니었다. 최근에 요리를 해먹은 탓에 부엌에서 냄새가 나는 걸까? 또 아니었다. 세탁기 청소를 할 때가 다가왔나? 하고 열어보면, 또 아니었다. 도대체 이 냄새는 어디서 나는 걸까? 신발장도 확인했지만, 냄새도 나지 않을 뿐더러 중문으로 가려져 있어서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심각한 발냄새는 문을 뚫고 들어오지) 그렇다면 범인은..? 빨래였다.
설마 빨래에서 냄새가 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빨래가 끝나면 세탁기 안에 오래 방치해두지도 않고, 바로 꺼내서 말리는데 에어컨과 선풍기를 동시에 틀어서 습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도 했다. 난 춥지만, 나의 빨래들에게 냄새를 남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냄새가 생겨버린 것이다. 이런 일을 대비해 빨래를 할 때마다 과탄산소다를 넣었는데.. 소용이 없었나보다. 아니면 이번 장마가 유독 습했거나.
그래서 빨래를 하나하나 뜨거운 물에 다시 삶았다. 언젠가 삶으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독립을 한 뒤로 존경하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특정인물은 아니고, 이번처럼 장마철에도 빨래에 냄새를 남기지 않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존경스럽다. 창문을 열어놓고 싶어도 빗물이 들어올까봐 열어놓지 못하는 상황이 있지만.. 어찌됐든.
냄새의 원인을 찾고 나선 빨래하는 게 두려워졌다. 다음 빨래도 같은 냄새가 나면 어쩌지? 장마철에는 빨래를 하면 안 되는 건가? 아니면 매번 뜨거운 물로 삶아야 하는 걸까. 뭐가 됐든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