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대전에서 올라온 친구가 있었다. 학기 중에는 학교 주변에 원룸에서 지냈고, 방학이 다가오면 대전으로 내려갔다. 어린 마음에 친구 혼자 지내는 것이 부러웠다. 늦게 들어온다고 혼내는 사람도 없고,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늦은 시간 햄버거를 먹고 싶으면 사와서 마음대로 먹고. 그보다 더 부러운 것이 없었다.
대학생이 되니 대전뿐만 아니라 창원, 부산, 거제도 등등. 다양한 곳에서 올라온 동기들이 많았다. 스무살부터 독립한 친구들이 멋있었다. 우리집은 너무 좁고, 나만의 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서울에서,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니니까 그런 공간은 나중에 결혼하면 얻을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에 말해 부정적이었다. 난 지금 나이에 혼자 있고 싶은데?
그 친구들도 원룸에서 지냈다. 1인 가구가 많은 신림에서 사는 친구들이 제일 많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신림은 여전히 1인 가구가 많다. 최근에는 역세권 청년주택 공사가 끝나간다는 소식도 들었다. 교통편은 다른 곳과 비슷한데 왜 신림이 유독 1인 가구가 많은지 신기하다. 저렴한 건 다른 곳도 저렴한데. 2호선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친구들은 시험기간이 끝나갈수록 아쉬워했다. 집에서 지원해주는 친구도 있었지만, 자신의 용돈에서 월세를 내는 친구는 본가로 내려가있는 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 월세를 내는 걸 아까워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단기로 옮겨다닐 수는 없겠지.
간혹 방학이 아닌데도 본가로 내려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휴학하거나, 대학 생활이 맞지 않다면서 자기만의 휴가를 보내는 듯했다. 그러면서 어느정도 회복되었다면서 자신의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때 또 한 번 느꼈다.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는 건 참 좋은 것이다.
그 친구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두 곳이나 됐다. 학교가 끝나면 홀로 쉴 수 있는 자취방. 자취방에서의, 학교에서의 생활이 힘들 때 갈 수 있는 본가. 나에게는 쉴 수 있는 게 본가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상 친구들에게 말했다. '넌 돌아갈 곳이 있어서 좋겠다.'
그런데 이건 나의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서울에 취업을 해야 하는 친구는 나의 말에 반대했다. '넌 몇 번을 돌아가도 서울이잖아. 차라리 돌아갈 곳 없이 계속 여기에 남고 싶어.' 생각해보니 20대 초반 학생 신분으로 연고없는 다른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나는 그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순간 미안해졌고, 그때부터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내뱉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응원했다. 친구가 원하는 곳에 돌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