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이다. 금주를 시작하자마자 다시 장마가 시작됐다. 그럼 난? 막걸리를 포기하고 집에 있어야 한다. 막걸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김치전을 정말 잘 만드는데. 만들어도 막걸리를 마실 수 없으니 김치전도 못 만든다. 이건 정말 반칙이다. 금주 심판이 있다면 하늘에 대고 옐로 카드를 내밀었어야 한다. 아쉽게도 심판은 없다. 굳이 찾자면 내 양심?
금주일기. 나에게 300일 같은 3일차.
그래 봤자 일주일에 한 번 마셨는데, 손이 떨리는 금단현상이 왔다. 맞다. 기분 탓이다. 내 손은 전혀 떨리지 않고,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다. 아닌가? 난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애써 부정하고 있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오늘 같은 퇴근길에 맥주라도 사 왔어야 한다. 늦은 출근, 빠른 퇴근. 비가 오고, 비 덕분에 운동도 취소돼서 자유의 몸이었다. 사실 집에 소주 반 병이 남아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소주는 안 될 것 같다. 맥주는 알콜도수가 낮고, 다들 샤워하고 난 뒤에 마시는 거라고 할 정도로 무서운 술이 아니다. 하나 정도는 사 왔어도 됐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양심적인가.
금주라는 게 사실 건강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었다. 통장 지키기와 흑역사 생성 금지를 위해 시작한 건데. 나도 모르게 건강을 위해서니까 마시지 말자는 흐름으로 만들고 있다. 나쁜 건 아니지만, 원래의 의도와 다르다. 나는 건강이 나쁜가? 아니다.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인가? 음.. 건강을 빨리 챙길수록 좋지만, 꼭 챙겨야 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합리화다)
이제 슬슬 연락이 오고 있다. 사실 주말 전에 회식 예정인데, 워낙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실제로 마실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회식이라면 금요일 저녁에 시작해서 토요일 새벽까지 회사 사람들과 함께 최소 3차까지는 술을 마시는 건데, 지금 다니는 곳은 분위기가 다르다. 회식이라고는 했는데... 맛집에 갈 예정이다. 아마 나처럼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연락을 피해야 하는데 기다리고 있다. 적어도 2주에 한 번씩 만나서 술을 마시는 친한 언니가 있다. 그 언니랑도 최소 2차는 가는데... 왜 연락이 안오지 싶으면서도 연락이 안 왔으면 좋겠다. 내 입에서 '금주'라는 단어가 나올 때 언니의 표정이 상상된다. 언니.. 그렇게 됐어.
사람이 이렇게 결심을 해서 지켰으면, 보상이 있어야 한다. 나는 한 달을 채우고 위스키를 내 스스로에게 선물해주려고 한다. 사실 위스키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근데 처음부터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술도 마시면서 배웠듯이 위스키도 사고, 마시고, 빈 병을 버려가면서 배우는 거다. 위스키가 그렇게 다음날 숙취도 없고, 많이 안 마셔도 술기운 올라오고! 나랑 잘 어울릴 것 같다. 한 달이라고 하면, 30일이고. 지금 3일이니까 27일을 더 버텨야 하네? 위스키는 내년쯤 살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