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커피'파 사람들은 생각보다 카페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 '안커피'파란 커피를 안 마시는 사람을 뜻하고, 내가 방금 만든 말이다. 반대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커피'파다. 나는 '안커피'파에 더 가까운데, 가끔 카페인이 끌리는 날에는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사실 카페인은 콜라에도 들어가 있어서 커피의 대체 음료가 많지만 나한테 카페인은 커피를 마셔야 느껴지는 맛이기 때문에 커피를 마신다. '안커피'파가 카페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는 메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커피'파는 커피를 마시니까 메뉴가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안커피'파는 선택지가 너무 많다.
'안커피'파중에는 원픽을 정해놓는 경우가 있다. 그게 바로 난데, 주로 똑같은 음료를 마시긴 하지만 계절에 따라 원픽이 달라진다. 여름철 원픽은 자몽에이드고, 겨울철 원픽은 고구마라떼다. 원픽을 정해놓는 사람들이 좀 무서운 게, 어느 카페에 가도 그 음료만 마신다.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가게 된 카페에 자몽에이드가 없으면 단호하게 발걸음을 옮겨 다른 카페로 이동한다. 확고한 사람이기도 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기도 하다.
한참을 자몽에이드만 마셨다가, 계절이 가을로 넘어오면서 뭘 마셔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자몽에이드를 마시기엔 쌀쌀하고, 고구마라떼를 마시기엔 이른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같은 농담을 좋아한다.) 따뜻한 음료를 마실 정도로 춥지도 않았고, 그때까지는 실내에서 반팔을 입는 사람도 보였다. 그런데 바로 하루 이틀 뒤에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영하로 내려가는 곳도 있었고, 패딩을 꺼내야 할 정도가 됐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았다. 날씨가 추울 수록 따뜻한 음료가 맛있어지고, 고구마라떼를 더욱더 맛있게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차가워진 손을 꺼내 고구마라떼가 담긴 컵을 만질 때의 그 녹는 기분은 지금 계절에서만 느낄 수 있다.
고구마라떼를 언제부터 마셨는가, 에 대해 생각해봤다. 언제부터였지? 사실 고구마라떼는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안 마시는 사람은 아예 눈길도 안 주는 메뉴다. 나도 분명 눈길을 안 주던 시기가 있었다. 그걸 이겨내고 내 입으로 들어오게 된 고구마라떼. 힘든 길을 걸어온 것이다. 뇌에게 일을 시켜보니 대학생 때 처음으로 마셨던 것 같다. 확실하진 않다. 그때는 따뜻한 유자차도 즐겨 마셨기 때문이다. 여튼, 나의 겨울철 원픽은 유자차에서 고구마라떼로 바뀌었다.
고구마라떼는 맛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금방 식고, 식으면 덜 맛있어진다는 아주 큰 단점이 있다. '모든 음료가 다 그렇지 않나?'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모든 음료가 그렇지는 않다. 분명 유자차는 식어도 맛있었다. 아무래도 라떼라서 더 그런 것 같다. 라떼는 말이야. 식으면 덜 맛있단 말이야.
반가운 고구마라떼의 계절을 맞이해서 써본 글이었다. 가끔 누가 고구마라떼는 먹나 했더니 너였구나, 하는 얘기를 들고 '겨울 고구마라떼'파로서 한 번 어필을 해주고 싶었다. 나의 원픽 고구마라떼를 무시하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다. 분명 나중에 고구마라떼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