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새벽 다섯시면 눈이 떠진다. 미리 맞춰놓은 알람 때문에, 그리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 때문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나이 좀 먹었다고 새벽 다섯시 기상 쯤은 어렵지 않다. 이불을 덮을 때 상체에 힘을 줬는지 아침마다 어깨가 아프다. 이건 나이 때문에 아니라 그냥 추워서 그런 거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으러 들어가기 전, 꼭 창문을 열었다. 환기에 미쳤다고 할 정도로 하루에 두 번 이상을 환기를 시켰던 난데, 이젠 창문을 여는 게 망설여진다. 더워서 에어컨을 송풍으로 틀었던 게 일주일도 안 된 것 같은데 이렇게 갑자기 추워진다고? 분명히 최고 낮 기온이 33도였는데, 왜 이제는 23도 하루아침에 10도 이상 낮아진 걸까.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면 10도가 겨우 넘는다. 가을을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하고 뽀글이 같은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 하는 계절이 온 것이다.
겨울이 오는 것이 싫지는 않다. 여름만큼 겨울에도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보드를 타러 가서 비싼 떡볶이도 먹어야 하고, 제주도에 어느 조용한 마을에서 급하게 산 어린이용 썰매로 언덕에 쌓인 눈을 즈려밟고 미끄럼틀 타듯 내려가야 한다. 이번 겨울에는, 더운 나라에 가서 한 달 내내 물놀이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기다리던 겨울이긴 했는데, 서서히 온 것도 아니고, 벨도 안 눌렀으면서 아직 양치도 안 한 상태로 누워있는 내가 놀랄 정도로 문을 확! 열어버렸다. 잠옷을 입고 있던 내가 놀라, 안 놀라?!
겨울 입장에선 어이가 없을 것이다. 매년 겨울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데, 올해라고 ‘저 들어갑니다?’ 하고 오겠냐고. 사계절이 없던 나라였다면 몰라도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에게 서운한 건, 그 사이에 가을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가을도 나름 사계절 중에 하나인데, 얼굴도 못 비추고 발만 잠깐 담갔다가 다가는 가을의 입장도 겨울이 생각해주면 좋겠다.
가을에게 이입하는 이유는, 내 생일이 가을에 있고, 그래선지 사계절 중 가을을 제일 좋아하고, 사계절 중 가을 옷을 제일 좋아하기 때문이다. 가을에 입으려고 기다리던 내 옷들은 어떡해야 하나. 겨울에게 서운한 존재가 너무 많네.
문을 나서자 찬바람이 먼저 얼굴을 감쌌다. 이어서 목, 팔까지. 찬바람이 팔에 닿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닭에 빙의된 듯 오돌토돌 올라왔다. ‘괜찮아. 괜찮아. 다치지 않아.’ 속으로 위로하며 손바닥으로 쓸어보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난 아직 겨울이 왔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겨울아. 좀 천천히 와줬으면 안 됐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