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ice
우붓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길지 않은 일정에 우붓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던 터라 기대가 없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고 싶었고, 그 이유 중에 하나인 요가를 하러 갔었다. ‘요가반’이라는 요가 학원이 규모도 크고 인기도 많다고 해서 일정 중 하루를 투자했고, 예정에 없던 여행 비용을 요가에 썼다.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요가하러 가는 길이 유독 덥고 힘들었다. 아마 숙소에서 멀지 않다는 이유로 걸어갔던 게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일 것 같다. 가는 길에 걸었으니 돌아오는 길도 걸었다. 걷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다가, 그건 한국에 있을 때, 그것도 날씨가 좋았을 때.
약 한 시간 동안의 요가는 정말 힘들었다. 동작 하나하나 할 때마다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미쳤었나?’까지 생각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요가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동시에 갈증이 밀려왔다. 요가반에서 편의점까지도 20분 이상을 걸어가야 했는데 그냥 택시를 부를걸, 후회도 했다. 구글 지도 속 나의 위치는 계속 움직이는데 편의점에 가까워지지 않는 게 이상했다. 나를 가지고 장난치는 줄 알았다. 억지로 다리를 움직여 편의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땀이 잔뜩 흐른 뒤였다. 이미 짧은 머리를 더 짧게 자르고 싶을 정도로.
마치 사막 위 오아시스 같았던 편의점에 들어가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를 반겼다. 그냥 거기서 이불 깔고 자고 싶었다. 진심이었다. 사실 편의점에서 빈땅이나 시원한 맥주를 마시려고 했는데 카페를 발견했다. 마치 토요일에 기대도 안 하고 산 로또에서 오천원이 당첨된 기분이랄까?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채로 메뉴판을 정독했다. 다양한 메뉴가 있었지만, 역시 한 번에 들이켤 수 있는 메뉴가 최고겠지.
얼음 추가, 양 추가를 해서 얻은 나의 아이스티!! 음료를 받자마자 반 이상을 들이켰다. 아이스티 가루가 덜 녹은 느낌이었는데, 역시나 다 마시고 나니 컵 아래에 덜 녹은 아이스티 가루가 잔뜩 있었다. 근데 이미 나한테는 발리에서 마신 음료 중 2위안에 들었기 때문에 (1위는 역시 빈땅 레들러) 아쉽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흔한 아이스티가 2위인지 궁금할 수 있다.
다른 동남아의 도시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발리는 얼음이 귀했다. 비싸거나 구하기 힘들어서가 아니다. 얼음이 나오자마자 바로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처음엔 얼음이 작아서 그런가? 아님 음료가 좀 뜨거웠나? 혹시 여기 얼음은 세상에서 제일 잘 녹는 얼음인가? 그런데 아무래도 그냥 ‘더워서’인 것 같았다. 실내에서도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지 않은데, 얼음이 빨리 녹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니까.
그렇다고 얼음을 안 시킬 수 없었다. 빨리 녹아버려도, 그 짧은 순간이라도 시원하게 마시고 싶었다. 발리 여행 후기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몇 걸음 못 걷고 카페나 식당을 들어갔다고 하길래 ‘약한 사람들이네.’ 생각했는데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백프로 공감했다. 발리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도 그 여행객들처럼 몇 걸음 안 가고 시원한 음료를 찾았으니까.
이런 점들 때문에 발리 현지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여행객들에게 기본인 ‘얼음’을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하긴,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인데 얼음을 먹겠냐고요. 오히려 길 한가운데에서 따뜻한 면요리를 먹고 있는 모습을 자주 발견했다. 역시 주어진 상황에 익숙해지면 그게 당연시되고, 이겨낼 수 있는 거구나. 나도 발리에 1년 정도 살면 현지인들처럼 얼음도 안 먹고,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도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대답은 (일단) 노. 발리여행이 끝난 지 몇 달이 됐는데도 탄 자국이 없어지지 않은 걸 보니 뜨거웠던 그때가 떠올랐다. 덥다..
우붓에서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시고 난 후에 방문한 식당에서 얼음을 주지 않는 걸 보고 이 말이 입에 붙었다. ‘with ice.’ 감사하다는 뜻의 ‘뜨리마까시.’를 쓰는 것과 거의 비슷한 빈도로 썼던 것 같다. 그리고 기분 탓이지만, 유독 한국여행객들에게 한 번 더 물어봐주는 것 같았다. ‘with ice?’ 잊고 있는데 물어봐주면 정말 땡큐. 아니, 뜨리마까시! 물론 안 물어보고, 내가 요청을 안 했어도 미지근한 음료수를 받고 나서 뒤늦게 요청했겠지만.